세상에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습니다. 성서에 보면 은총과 축복을 누구보다 많이 받은 사람들, 예언자들, 사도들, 예수님 그리고 그의 추동자들의 생애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따라다닙니다.
성서의 위대한 인물들은 대개가 그 인생길이 험악했습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는 혹독한 박해를 받았고 백성으로부터는 멸시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오늘 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 에제키엘과 사도 바오로 그리고 주 예수님의 길이 모두 그랬습니다.
오늘 제1 독서에 나오는 에제키엘은 유다왕국이 바빌론에 유배되어 있을 참담한 암흑시기에 동족에게 하느님의 위로의 말씀을 전하던 예언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하느님의 종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당한 힘겨운 임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2 독서에서도 사도 바울로의 고난과 고뇌를 실감 있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예수께로부터 직접 선택되어 이방인의 사도로 불림을 받은 사도 바울로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그것을 가시로 찔리는 듯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이 가시를 몸에서 빼어달라고 간구하였으나 하느님께서는 그 가시를 없애주시지 않고, 그 고통을 이겨내라고 명하십니다. “나의 은총이 너에게 충분하다. 너는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은총도 함께 받았다.” 이것이 하느님의 대답입니다. 인간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말씀이다. 세상의 지혜로는 너무 알아듣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억울하고 눈물 날 때가 오히려 성장의 시기요, 은총의 시기입니다. ‘우는 이는 행복하다. 나를 위하여 박해받고 모욕을 당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지금 보이는 그 모습만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보이지 않은 것을 보이는 것으로 확신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나약하고 보잘것없고 힘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독서의 말대로 내가 약해졌을 때 나는 강합니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행복은 골고다 언덕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골고다 위로 올라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예수님도 고향과 친지들에게서 오해와 핀잔을 받다가 골고다에서 죽음으로서 다시 사셨습니다.
도대체 왜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들이 이처럼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합니까? 모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하느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뽑힌 특별한 선택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랑과 선택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향에서 멸시와 박해를 받았으며 같은 동족으로부터 온갖 수모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오늘의 시대에도 특별한 소명을 받은 예언자들은 그 길이 험난한 길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수행하기에는 힘들고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하게 선택하신 사람은 고달픈 길에서 참 보람을 찾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세상은 예언자들에 의해 구원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예언자의 길은 고달픕니다. 우리는 그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세상의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