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는 오늘은 달이 차고 기움을 시간의 기준으로 삼고 사는 동양 민족들에게 주어진 새날, 음력 설날입니다.
서양의 달력은 태양이 ‘뜨고 짐’이 기준인 양력이지만, 동양의 달력은 달의 ‘차고 기움’이 기준이 된 음력입니다, 그래서 서양은 ‘빛과 어둠’이 기준이고, 동양은 ‘결핍과 충만`이 기준입니다. 서양의 시간은 빛에서 어둠으로, 그리고 다시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것이 시간이라면, 동양의 시간은 부족에서 충만으로, 그리고 다시 충만에서 부족으로 도는 순환의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서양의 사람들은 빛과 어둠이라는 명확한 두 세계를 이분법의 질서에서 흑백논리로 철학을 하고, 동양 사람들은 부족과 결핍이라는 두 세계를 ‘조화’로 이루는 철학을 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에게 이분법의 질서에서는 내가 부각되고 개인이 중심이 됩니다. 하지만 동양 사람들에게 세상은 순환하는 것이라 개인보다 우리를 더 앞세웁니다. 그러므로 동양인들은 일찍이 ‘길흉화복’이 뒤섞인 그것을 인생이라고 본 것입니다. 길흉화복은 돌고 도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불행 속에 행복이 있고, 기쁨 속에 고통이 있다고 보는 동양의 지혜였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차고 짐’이라는 돌고 도는 시간과 돌고 도는 세상을 보게 만들었던 달의 달력 ‘음력’의 사고에서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영성은 관계라 합니다. 공동체를 이루는 일, 함께 섞여 사는 삶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웃과의 관계의 삶이 영성생활이라고 본다면, 최고의 영성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나보다 못한, 못 배운, 못 가진 사람을 대접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이런 나를 위하여 살아준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는 날입니다.
나를 위하여 헌신하며 살아준 이가 있었습니다. 특히 그분은 어머니입니다. 하느님이 함께 할 수 없어서 세상에 어머니를 보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머니들은 하느님의 천사입니다.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면 그것이 곧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내가 있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행복과 감동을 줄 수 있으면 그는 분명 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고 하느님의 천사입니다.
나를 위하여 너무 많이 손해 보며 살아준 이가 있었습니다. 나는 사실 그들 덕분에 살았고 그들 때문에 사는 것이며 다시금 그들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명절은 이 자명한 사실을 알아차리는 날입니다. 제사상을 차리는 것도 나를 있게 해 주신 분들을 기억하며 내 이웃들을 찾아뵙고 문안을 올리며 수많은 관계 속의 나를 만나는 것, 모두 바로 명절이 지닌 미덕입니다.
새해, 한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의 복음은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하고 가르치십니다. 허리에 띠를 띤 사람은 일하는 종입니다. 그런 종이 되라고 하십니다. “준비하고 있어라.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있어라.”
인생을 신중하게 처세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생이란 하느님이 안 계시면 허무하기 그지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이 한 해가 하느님을 향해 깨어 있는 나날이 된다면 참으로 우리 모두에게 큰 복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삶은 시간 속에 사는 삶이 아니고 영원에 뿌리박고 사는 삶이기에 우리의 삶은 인생무상이란 한계성과 상대성을 극복할 수 있는 목적이 있는 삶입니다. 영원을 향한 하루하루가 아니라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 인생입니까! 그러므로 오늘 복음 말씀은 한마디로 신앙생활이 고향을 찾는 명절의 모습을 닮기를 요구합니다. 영원한 고향인 천국에서 하느님을 뵐 수 있도록 섬기고, 깨어 준비하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진정한 참 영성은 하느님께로부터 우리가 부름 받은 소명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이웃의 필요를 헤아려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움이 되어주는 삶을 살아갈 준비가 필요합니다. 늘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 안에서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를 축복하며 우리를 재촉하십니다.
금년 한 해도 우리 가까이 있는 수도가족은 물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관계를 새롭게 하며,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