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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2024년 6월 2일) - 이영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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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03 23:56:28
  • 조회 수: 2310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입니다. 나자렛 예수께서 모든 것을 걸고 추종했던 제자들에게 결국 최후의 만찬이 되고 말았던 그날 밤, 과월절 식탁에서의 의미심장한 말씀이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처럼, 오늘도 우리에게 생생히 다가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이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내 피다.” 했을 때, 그것은 상징이고 비유의 말씀 인 줄로만 알았지만, 그 다음날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참말이었습니다.

 

그 후에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시던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함께 모여 예수님과의 마지막 식사를 회상하며 한 조각의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입에 넘기는 순간마다 그분의 살과 피가 온몸을 적시며 우리를 위한 그분의 큰 사랑에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고동치게 합니다.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신다는 것은 부활하신 영광의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살아생전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시던 예수님의 모든 삶과 죽음을 기억하며 그분의 모든 삶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체성사 안에는 베들레헴 마구간의 여물통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탄생하신 강생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척박한 고난의 땅 갈릴레아에서 목수 일을 하시던 노동자 예수님의 모습이 있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버림받고 소외된 죄인들과 어울리시며 그들과 함께 빵을 먹고 우정을 나누시던 모습이 그리고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시는 착한 목자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십니다. 높은 사람이 되어 대접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시며 몸소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그 예수님이 겸손한 모습으로 현존하십니다. 오병이어 표징으로 베불리 먹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을 때 홀로 산으로 피신하신 예수님은 그다음 날 찾아온 군중들에게 나는 살아있는 빵이라 하시며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며, 내게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내 살이라고 일러주시면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른다.”(요한 6, 56) 하셨던 바로 그분을 우리 안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하늘로 떠나시던 날,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하신 약속과 너희가 둘이나 셋이 내 미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겠다.”라고 하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모여 함께 나누는 이 성체 안에 현존하십니다.

 

그리고 성체 안에는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시는 놀라운 하느님의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즉 멀어졌던 하느님과 인간을 다시 결합시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과 일치시키려고 구원 계획이 들어 있고, 갈라진 사람과 사람을 놀라게 한 몸으로 일치시키려는 계획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토록 놀라운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심오한 신비가 담겨 있는 성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화두입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을 그대로 수용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안에 교회의 영적 전 재산이 내포되어 있다.’ 하였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교서 교회는 성체성사로 살아갑니다. 제목 그대로, 성체성사라는 이 만찬의 자리 때문에 교회는 존속하는 것입니다. 사제도 성체성사 때문에 있고 신자들도 성체성사를 위하여 모이는 백성입니다.

 

성체성사는 한마디로 먹을 것이 되어주는 일, 세상에 생명을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도 명확합니다. 교회는 바로 먹을 것이 되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고, 신앙은 바로 나 자신이 먹을 것이 되어주는 존재로서의 거듭남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유대교의 오랜 전통과 그리스도교의 경전 안에서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자신들을 먹이시고 양육하시는 분으로 이해했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에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생명을 지탱시켜 주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관대하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의 복음서에는 빵의 표징이 9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빵 앞에서 거룩한 현실을 마주합니다. 빵은 생명을 주고 양육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생명을 보호하는 어머니입니다. 그렇습니다. 먹을 것이 되어주는 일이 성체성사이고, 남에게 먹을 것이 되어주는 그곳에 하느님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인간답고, 자비로우며 마음을 열도록 하기 위해서, 그분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 이기심과, 우리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는 두려움과 편견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충만하게 얻을 수 있도록 예수님은 우리에게 특별한 양식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빵과 물고기로 굶주린 군중을 먹이셨으며,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그의 목숨을 건 희생과 나눔을 기억하는 모든 성찬전례는 결국 그의 먹을 것 되어주심을 기억하여 빵을 축복하고 나누는 행위의 반복입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몸과 피를 먹고 나누어 마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도전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오.” 하고 말입니다. 이제는 쪼개어지는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들이 당신의 일을 이어가기를 바라십니다.

 

성체성사는 그저 눈에 작고 조그만 빵쪼가리가 아닙니다. 밥이 한 그릇의 영양 덩어리만이 아니었듯이 성체는 하느님의 눈물,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하느님 자체이십니다. 그리고 그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들은 어느새 하느님의 얼굴을 닮아가고, 하느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성체성사의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성 아오스딩은 고백록에서 사랑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하심으로써 당신은 저를 사랑할만한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것처럼, 성찬은 우리 모두를 변화시키는 성사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실천하게 만드는 성체를 통해 우리는 모두 배고픈 사람들에게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빵이 되는 거룩한 사람들로 변화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보다 더 큰일을 행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한 14, 12) 예수님은 오천명을 배불리 먹이셨지만, 우리는 세상을 배불리 먹일 것입니다. 이제 그 일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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