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씨튼 수녀회

2024년 찬미받으소서 주간 폐막 미사 - 김주남 베드로 신부님(전주교구)
  • 홈지기
  • 2024.05.27 17:59:22
  • 조회 수: 845

찬미예수님,

들을만 하시면 들으시고 별로다 싶으시면 주무셔도 됩니다. 주제가 너무 어려웠는데 진지하게 마주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동물들의 시노드가 열려서 지구를 위해 당장에 없애버려야 할 생물군을 투표로 정해보자 했을 때, 뽑히는 건 당연히 인간일 거라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환경 오염에 기여하는 여러 요인들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인간의 출산, 재생산이라는 말도 있어요. 어쨌든 사는 동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호흡에서부터 탄소를 뱉게 되어있고, 기저귀를 쓰면서부터 화장되어 날아갈 때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숱하게 발자국을 새길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사는 게 죄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그 죄의 얼룩을 조금이나마 없애보려고 애를 씁니다. 저는 지금 여기 정동 수도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전주교구 사제인 저는 우리 집도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원 전기 아낄라고 수도원 물 아끼려고 애를 씁니다. 나에게서 나오는 탄소발자국을 추적하다가 드라이기가 조금만 써도 상당히 전기를 많이 먹네. 삭발을 하고, 내가 공부를 하는데 노트북이나 태블릿 전기가 꽤 나가네. 태양광 패널로 충전해서 쓰고있습니다. 좌변기를 쓰면 물이 한번에 12리터 나가지만... 소변기를 쓰면 1리터도 안 나가네? 복도에 있는 공동 화장실에서 볼일을 봅니다.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다시 돌아와서 우리 공동의 집이라는 비전 때문입니다.

 

어벤져스라는 영화를 보면 위대한 영웅이 나옵니다. 인구 과밀화와 자원 고갈로 인해 파멸로 치닫는 우주 생태계 보존을 위해서 지적 생명체의 절반을 제거해야한다라고 말씀하셨던 위대한 타노스님께서는 결국, 인류를 박멸하는데 성공하고 그뒤 깨끗한 행성에 가서 홀로 농사짓고 자급자족하며 농부로서 무위자연하며 여생을 살아가셨습니다. 타노스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생태주의자입니다.

 

라는 요런 식의 이야기가 한편에서는 각광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자연 회복을 위해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 ‘인간은 지구회복 운동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라는 식의 사고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인간을 빼고 생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과연... 인간을 빼고 생태를 다뤄도 괜찮을까요?... 하지만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인간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인간을 지구에 두길 원하셨고, 인간을 더욱 적극적으로 자연과 상호 작용하며 상호 고양을 이루어나가야 할 존재로서 세우셨다는 통찰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 반대는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다. 야 이 찬란한 인류 문명을 봐라.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이야기하는 기술 맹신주의가 또 반대급부에 있습니다. 양 극단입니다. 극단적 생태주의와 기술 맹신주의.

 

찬미받으소서 회칙은 통합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을 빼지 않습니다. 창조 신앙 안에서 인간이 특별히 탁월한 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인간만이 활약할 수 있는 구간이 분명이 있기 때문입니다인간과 다른 동식물을 구분하는 지점이 어디인가우리 형제 자매님들, 인간의 탁월함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인간의 탁월함이 어디에 있을까요?

 

다 요약해보면 하느님의 모상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성.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음에 있는데.

하느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는 2가지 정도로 정리해보면...

  • 고유한 특질에 초월하려는 경향성, 영원을 추구한다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악을 구별하고, 양심의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특질이 있다.
  • 관계적 존재라는 것. 하느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관계적 본성을 지니셨다. 그리고 아주 친밀한 친교의 관계안에 계시다. 누군가를 그것을 춤으로 표현하고, 강강수월래라고도 하고, 서로가 서로 안에서 상호 내주 하며 뱅글뱅글 도는 것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그러한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 또한 그러한 관계적이고 그러한 친교적인 모습을 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관계의 하느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일이 되는 것이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맺으시는 친교는 어떠하나? 1.끊임이 없고 2.흠이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 또한 모든 피조물과 흠없고 지속적인 친교를 이루도록 부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겠어요. 이것을 회칙에는 우주적인 친교를 이루는 우주적 형제애universal fraternity, 우주적 가족(universal family) 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조금 머리아파요.)

빅뱅이전 우주의 시작점에 우린 모두 한 점이었죠. 빅뱅 때의 터져나왔던 별가루와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원자의 구성요소는 동일하다고 해요. 우리를 구성하는 유기물이나 우리 눈 앞에 있고 만질 수 있는 무기물이나 모두 태초엔 하나의 고향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그런 공동의 뿌리를 가진다는 비전을 누가 먼저 가지고 계셨냐? 이 공간의 수호성인이시죠.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 공동 근원을 하느님으로부터 발견한 것이고, 풀과 벌레처럼 미미한 피조물까지도 형제요 누이라고 불렀던 것이에요. “한 하느님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회칙의 말씀은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역사적이고 과학적이고 실재인 것이죠. 그런 연결성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본질이고 우리 인간들 또한 그런 연결성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다만, 다른 피조물들은 이런 자연적 본질을 참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창조되었을 뿐이고... 인간에게는 굉장한 선물인...그렇지만 위험한 선물인 의지의 자유란 게 주어졌는데. 관계를 꼭 붙잡고 친교를 살아갈지 아니면 그 관계를 끊어버리고 단절을 살아갈지 인간의 자유에 완전히 맡겨버리신 그 하느님의 위험한 모험이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말씀 안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 준하는 만큼의 자유를 이들에게 허락하자.’ 인간의 성숙에 대한 대단한 신뢰를 하느님께 보여주셨는데. 그 자유를 남용하고 신뢰를 저버린 결과가 오늘날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인간 내면에 타고난...생생히 살아있어야할 삼위일체적 관계성이 말라버리고 사막화 됨에 따라...회칙 표현에 따르면 인간 내면의 광야가 넓어짐에 따라 지구의 외적인 광야의 넓이도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글로 쓰기는 지구의 위기라고 쓰지만 읽기는 인간 내면의 위기라고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메타노이아. 정신의 돌아섬. 내적인 회심입니다.

 

성경의 창조이야기가 증명하고 현대 과학이 뒷받침해주는 것은 이 우주가 기계적 원리로 작동하는 커다란 구조물이 아닌 영적이고 정신적인 존재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비가역적으로 생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인간은 우주의 영적이고 정신적 차원을 활성화시키는 존재이구요. 우주가 인간을 통해서 성찰을 한다고 합니다. 인간이 우주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인간 안에서! 인간을 통하여! 사유한다는 것이죠. 우주는 시간이 갈수록 좀 더 복잡하고 정신적이고 영적이 되어 가는 방향으로 진화해가는데, 우주가 처음 반성하고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 인간 종의 출현 사건입니다. 우주가 우리를 통해 성찰을 한다니 얼마나 멋집니까?!? 인간은 우주 자체의 가장 심오한 차원을 활성화시키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우주는 수백억년의 역사 안에서 인간 존재의 출현을 간절히 기다려왔다! 는 것이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인간 현상입니다. 현재 우주의 꼴이 그렇게 생긴 것은 인간의 출현을 마치 우주가 기다린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우주가 우주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를 기다려온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이를 사도 바오로는 어렴풋이 느끼고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며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특별히 하느님의 자녀들은 우주의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느님께서 사명을 맡겨주신 존재들임이 드러납니다.

 

이렇듯 인간이란 생태를 이야기할 때 배제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반드시 껴 있어야 한다. 왜냐 우주가 기다려온 존재이기 때문에... 생명체가 단순히 단백질, 지방, 여러 유기물과 무기물이 결합되서 생겨난 우연한 존재가 아니고 지속적인 창조의 과정 중에, 진화의 역사 안에서 반드시 존재했어야 할 어떠한 고귀한 사명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린 단세포 생물로부터 진화를 해왔고, 수많은 존재가 있었다가 사라졌고, 포유동물이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우주의 벤야민, 우주의 금쪽이 인간이 출현합니다. 우주의 영적, 정신적 측면을 활성화 시키는 존재로서 말입니다.

 

태초의 순간 그, 이전을 상상할 수 없는 시절부터 우주를 감싸고 있던 질서가 있었다고 하죠. 학자들은 그것을 우주의 곡률’, ‘우주의 휘어짐이라고 표현하고 그것이 어쩜 그렇게 존재들을 존재들을 조화롭고 귀하게 포용하는지를 바라보며 대자대비의 곡선’, ‘연민의 곡선’, ‘자비의 곡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거대한 휘어짐은 너무나 부드럽게 모든 만물을 감싸 안고 있고 연연 사이의 애정이라든가, 친구 사이의 우정이라든가, 모든 물리적 존재가 다른 물리적 존재와 맺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중력적 끌림의 기원으로 자리합니다. 삼위일체의 형상이 관계의 형상을 띄고 있고, 관계와 관계 사이를 이어주는 성령의 흐름같은 것을 떠올려 볼 수 있겠습니다. 우주적 형제애는 어떻게 가능한가! 우주의 기원으로부터 있던 거대한 창조적 휘어짐인간 존재의 휘어짐을 일치시킴으로써 가능하다. 인간은 그 휘어짐을 성찰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쉽게 말해 성령의 뜻 하느님의 뜻을 성찰하고 그것을 좇아 살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이에요.

 

인간이 성찰하기 전의 우주는 빈 공간인 space입니다. 허무하고 적막한 공간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성찰하는 순간 우주는 universe가 됩니다. 하나의 언어, 말씀, 로고스로 가득한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의미와 가치로 가득한 공간, 우주는 자비로 채워지고 감싸진 공간이 됩니다.

 

사랑과 자비라는 우주의 질서를 읽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인간 모상성의 탁월함입니다. 인간이란 종이 창조의 영광을 입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어졌다는 창조의 빛나는 왕관을 쓴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지배하고 다스리는 차원의 지위가 아니라 내적으로는 우주를 감싸는 자비의 흐름을 읽어내고, 그것을 우리의 육체로! 실천으로 육화시켜 낼 수 있는 그럼 품위와 책임이 있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 품위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하는가? 찬미받으소서, 211

플라스틱이나 종이의 사용을 삼가고,

물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적당히 먹을 만큼만 요리하고, 생명체를 사랑으로 돌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승용차 함께 타기를 실천하고, 나무를 심고, 불필요한 전등을 끄는 것... 이 모든 것이인간 최상의 면모를 보여 주는 관대하고 품위있는 창의력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부터 작은 일에 성실하는 것이 필요하다. 찬미 231.

그러한 일상의 작은 몸짓들이 모여 돌봄의 문화가 온 사회에 스며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이 무용해 보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실은... 우주의 가장 깊은 차원을 활성화 시키고 있고, 우주의 휘어짐에 우리의 휘어짐을 일치시키고 있고, 그 우주의 자비를 육화시키는 아주 고귀한 일이다. 예수님의 강생은 사랑과 자비라는 우주의 질서가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손에 잡히는 모습으로 휘어져 내려왔다는 것을 아주 뚜렷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실천도 마찬가지로 우주의 질서, 돌봄의 문화를 육화하는 것이되죠. 그것이 창조의 최고 영광을 입은 우리 인간이 세상을 위해 보여줄 수 있는 품위입니다.

 

찬미받으소서 회칙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신의 품위를 인식한 사람들은,

하느님이 쓰신 책. 이 자연을 경탄과 경외의 원천으로 관상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이라도 행동해 나갈 것 입니다. 나의 실천이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다고 유별나고 누군가는 유난떤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 그 행위들로 우리의 존엄과 품위를 드러낼 것입니다.

 

우주가 인간을 통해서 꿈을 꿉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let us dream하자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함께 꿈을 꾸자! 주님께서는 세상의 중심에 현존하시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빛을 주십니다. 그분께서 몸소 이 땅과 궁극적으로 결합하셨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가 새로운 길을 찾게 언제나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기 모인 우리는 우주의 가장 심오한 영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을 활성화시키는, 우주의 관계성을 성찰할 수 있는, 하느님의 책을 섬세히 읽어낼 수 있는 그런 품위를 지닌 고귀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노아 시대에 단 한 사람의 의인이 세계의 회복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각자가 그 단 한 사람으로 서기를 다짐하며 시대가 원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찬미받으소서 본문 마지막항이죠 245.으로 강론 마칩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중심에 현존하시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빛을 주십니다. 그분께서 몸소 이 땅과 궁극적으로 결합하셨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가 새로운 길을 찾게 언제나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 찬미 받으소서.

 

그런 의미에서 이 미사 안에 모인 우리 각자 각자가 작다고 미약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는 지금 우주의 한 측면을 만지고 활성하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찬미받으소서 236항의 내용입니다. “성찬례 안에 현존하시는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드님과 하나 되어 온 우주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성찬례는 그 자체로 우주적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우주적입니다. 성찬례는 시골 성당의 초라한 제대에서 거행될 때에도 어떤 면에서는 늘 세상의 제대에서 거행되기 때문입니다. 성찬례는 모든 피조물을 품고 그 안에 스며듭니다.”(찬미 236)

 

 

우리 신앙인들이 낼 수 있는 저력은 그 희망이 없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에요그래서 우리가 시민단체들과 약간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시민단체들은 지구가 파괴되고 나면 완벽한 어느 정도 가서는 조선 돌아서게 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사라지면 그런데 우리들은 지구가 멸하는 그 전날까지도 어떤 사랑의 실천들, 생태적 실천들, 사과나무 한그루를 심을 수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신앙적인 차원에서 하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심판받을 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끝까지 할 수 있는 거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심판대 앞에 불려놓고 이렇게 말씀하실 거 같아요너 그 시절에 너가 해야 되는 예언자들이 뭔지 알고 있었지? 그러면 그 일에 얼마나 충실했니 그때 조금이라도 변호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었으면 사실 저는 그것 때문에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기계신분들께서도 그런 저력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참 절망스러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계속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원천이고 저 저력이 하느님과 신앙에서 나온다.

 

우리는 찬미받으실 분이 누구셔야 하는지 바르게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오늘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두어라“ 그래야...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신명 4,39)

 

우리는 우리를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로마 8,13)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2티모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주님께서는 세상의 중심에 현존하시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빛을 주십니다. 그분께서 몸소 이 땅과 궁극적으로 결합하셨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가 새로운 길을 찾게 언제나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인간은 꿈을 꾸고 노래하는 존재입니다노래하는 것은 굉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실 때 그냥 만들어 만드실 것 같지 않고 노동요를 부르면서 만드셨을 것 같아요그 창조의 가락이 있고 리듬이 있다회칙은 노래하며 걸어가자고 합니다그분께서 그 부르셨던 창조의 리듬과 가락에 우리도 함께 흔들리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성령께서는 새로운 길을 찾도록 우리를 언제나 이끌어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 창조의 힘을 붙잡고 창조의 리듬을 느끼고 이 땅의 박동을 함께하자는 것입니다.

 

노래하며 걸어갑시다!
지구를 위한 우리의 투쟁과 염려가 우리의 희망과 기쁨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바람의 힘을 붙잡자!

노래하며 걸어가자!

이런 말들이 우리를 지치지 않게 합니다.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