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 축일 착복식 (루카 2,22-40)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이자 ‘봉헌 생활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심을 기념하고 주님 봉헌의 참된 의미를 묵상하면서
'신앙인’이란 무릇 하느님께 봉헌하며 사는 사람'임올 자각합니다. 특별히 봉헌/축성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다시금 되새기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뜻깊은 날에(보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봉헌생활’을 시작하는) 착복식을 거행하게 된
송혜원 요안나 수녀님과 강민서 안나 수녀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제1 독서는 봉헌의 참된 의미를 일깨웁니다. 참된 봉헌은 말라키 예언자에 의하면,
‘주님의 마음에 드는 의로운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드는 의로운 제물'이 무엇인지
예언서 전체를 마감하는 ‘말라키'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말라키 예언자가 활동하던 때에 다음과 같은 역사적 상황이 있었습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하고 경신례를 다시 거행하기 시작했지만, ‘이민족과 혼인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불씨는 백성들의 신앙이 식어가고 전례를 등한시하며 불충과 부정을
저지르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말라키 예언자는 이러한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며 강하게
대응합니다. "너희는 눈멀거나 병든 짐승 또는 훔친 짐승들을 재물로 올리며, ‘거룩하고 성별된 것'을
봉헌해야 할 제단을 더럽힌다. 이방신을 섬기는 여자들과 혼인하거나 조강지처를 버리고 이혼한다.
과부와 고아를 억압하고 이방인을 밀쳐낸다." 등등 많은 백성들의 부정과 불의를 고발하며 심판을
예고합니다.
요컨대 말라키 예언자가 전하는 ‘주님의 마음에 드는 제물은' 다른 예언자들도 일관되게 강조했던
거룩하고 정성된 마음, 갈림 없는 몸과 마음, 그리고 가난한 이웃에 대한 책임이었습니다.
오늘 수도복 착복이 두 분 수녀님의 하느님을 향한 갈림없는 마음, 참되고, 선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마음의 구체적인 표현이라 믿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두 분 수녀님이 가난한 사람들 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알아보는 눈이 더욱 선명해지고 밝아지시길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시메온은 자신의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고백하며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사내아이를 성전에 봉헌하러 온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을 텐데 그 가운데
아기 예수님올 시메온은 어떻게 알았을까?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간 시메온은 성가정을
알아보았는데 그는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 를 기다리던 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메온은 자신이 주님을 뵙기 전에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말씀을 굳게 믿었고, 인내롭게
구원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우리 역시 의로운 삶과 독실한 신앙, 그리고 인내로운 기다림의 자세로
사람들 안에 살아계신 주님, 사건들과 상황들 안에 자리한 하느님의 현존과 이끄심과 섭리를
잘 알아차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시메온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메온이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뵙는
특권을 누렸는데, 이는 신앙의 눈으로 예수님을 알아보는 모든 이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뵙지는 못했지만 신앙으로 그분을 뵙고, 그분을 믿고, 그분을
사랑합니다.
오늘 착복식을 계기로 보다 본격적인 봉헌/축성생활을 시작하시는 두 분 수녀님께 다시 한 번
축하와 격려의 인사를 드리고, 부디 갈림없는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주님과 이웃을 섬기며,
참된 봉헌의 삶을 이어가시길 빕니다. 또한 이미 수도복이 자기 존재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선배 수녀님들'에게도 오늘 이 시간이 각자의 착복식 때 첫 마음을 다시 떠올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