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간 월요일
오늘 복음의 화두는 단식입니다. 이스라엘은 정해진 단식 날이 많았습니다. 십계명을 받아오던 날,
우상숭배에 물든 이스라엘을 향해 모세가 율법의 비문이 새겨진 돌판을 깨뜨려버린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방의 왕이 자신들의 성전을 파괴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모든 백성은 공적으로
단식했습니다. 그들에게 단식은 단식을 통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다시금 그러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기회로 여긴 것입니다. 그것이 단식이었습니다.
그러다 점차 이 단식이 개인적 신앙심과 경건함을 나타내는 행위로 바뀌어갑니다. 개인적인 회개와
참회는 별 상관없는, 각각의 신앙심 정도에 따라 이 단식의 숫자를 늘여 가는데 치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는 스스로의 경건함을 드러내는 수단을 넘어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을 단죄하는
잣대로 적용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것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대단히 단호하십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지금이 잔칫날이라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지금은 새로운 메시아의
시대가 왔음을 드러내십니다. 바로 그 때란 단식의 잃어버린 정신을 되찾을 때입니다.
자기 수행, 자기 경건함을 높이기 위한 단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신랑을 빼앗길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갈바리아 산 높이 세워졌을 때, 그 때에 비로소 제대로 된 단식, 내 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의미의 단식, 끝없이 반복되는 나의 죄와 신앙의 매너리즘에 젖어 맥이 다
빠져버린 형식주의로부터의 단식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그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것입니다. 유대교라는 헌 부대에는 결코 새로운 술, 새로운
향기와 새로운 기운으로 기득차 있는 그리스도교가 담길 수 없음을 천명하십니다.
살아도 살맛을 느끼고 신앙생활을 해도 신명을 찾는, 하느님 나라 잔치가 내 인생 안에서 벌어질
오늘 하루를 다시 살아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