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목요일 미사
비우면 채워지고, 내가 손해 보면 많은 사람이 이익이 되고, 낮추면 높아지고, 내가 죽으면 많은 사람이 사는 이 오묘한 파스카의 신비를 재현하는 거룩한 성삼일의 첫날, 주님 만찬 기념미사입니다.
이 밤, 우리는 성체성사의 신비 속으로 초대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인간을 향한 헌신과 하느님의 놀라운 자기 비움을 만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제가 누구인지, 수도자의 참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오로지 사랑만이 세상의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갈등을 극복하며 분리를 이겨내게 만드는 유일한 힘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우리 안에 드러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필생의 꿈이 무엇이고, 이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그 꿈이 실현된 하느님의 나라의 모습이 어떤 나라인지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몸을 굽히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역전입니다. 아랫사람들이 집주인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이 종을 섬깁니다. 이것이 사랑의 논리입니다. 아래로 한 없이 낮은 자리로 내려가시는 하느님의 논리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삶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겉옷을 벗으심으로써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내밀한 열망을 드러내시고,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더 작아지고 연약해지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누었던 같은 일치와 친교를 제자들과 함께 살아내기 위해 스스로 작아지고 겸손해지십니다. 제지들을 향해 사랑과 연민의 몸짓을 보이신 예수님은 더욱 가난해지십니다. 종이나 노예처럼 되어 다른 이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써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과 동일시하십니다. 예수님은 공생활 중에 병자, 굶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옥에 갇힌 사람과 하나 되셨습니다. 하느님은 고통 받는 지들 안에 숨어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과 함께하라고, 사랑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서 당신의 기쁨을 나누어 주시고 우리가 행복해 지라고 오늘도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참으로 사랑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의 발 아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의 발을 씻기듯이 내 모두를 내어던지는 것이고, 그의 발에 입 맞추듯 마지막 남은 내 지존심의 끝자락마저도 내려놓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위대하다고, 그의 사랑을 온전히 녹여낸 이 성체성사가 장엄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체성사의 본질을, 그의 명을 따르는 사제의 본질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살아가려는 우리 수도자들의 본 모습을 발을 씻겨주시던 이 밤에 담아 본을 보여주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당신의 제자가 되고 하느님의 나라에 속하고 싶다면 당신의 모범을 따라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시실 발을 씻겨주는 마음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그의 발을 품고 그의 발에 입 맞추는 미음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만 있다면, 바로 그분이 꿈꾸시던 하느님의 나라가 실현되고, 그곳이 천국이요, 바로 그곳이 부활임을, 본을 보여주십니다.
발 씻김의 예식은 오늘 성목요일이 갖는 중요한 의미 세 가지, 성체성사의 제정과 사제직의 설정, 그리고 형제애의 정도를 한꺼번에, 고스란히, 보여주십니다.
성체성사의 정신이 무엇인지, 세족례는 보여줍니다.
사제 직무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 세족례는 보여줍니다.
형제애의 기준은 무엇인지, 세족례는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 발을 씻겨주어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가장 부끄러운 상처와 심각한 고통을 보듬어주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서로 냉대하거나 맞는 사람 맞지 않는 사람 정해놓고 자존심의 높낮이를 따지고 있다면 그것은 형제애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성체께 대한 모독입니다.
산디는 것은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은 죽는 일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이 마음으로 다시금 성체 앞에 설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성체 앞에서, 우리들의 삶은 예수님의 삶을 흉내 내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그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임을 다시 다짐해봅니다.
이제 세족례의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이 시작됩니다. 내가 이제껏 받아 모신 성체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이제껏 믿어온 신앙과 내 삶은 일치를 이루었는지 , 그리고 나의 죽음을 통한 부활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잠시 묵상하십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