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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섬김의 해가 되십시요
  • 홈지기
  • 2014.02.03 07:39:00
  • 조회 수: 4036

설 미사

 

오늘은 설입니다. 머리는 양력의 11일을 새해라고 부르면서도 여전히 우리 동양인들에게는 유전자처럼 남아있는 음력의 기준, 곧 설날을 챙기고 이날에 함

께 모여 떡국을 한 그릇 먹어야 제대로 나이를 먹는 것 같습니다. 동양의 새해를 알리는 설 축제는 가족, 한마디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로 돌아가 자신의 역할과 정체를 찾는 것이 축제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다가도 몇 시간, 몇일이 걸려도 자기가 소속된 가족 공동체를 찾아갑니다. 이것이 동양인들에게는 축제이고 관계성의 회복을 이룸입니다.

그리스 철학이 바탕이 된 서양 사람들에게는 행복이라는 것은 자신의 자질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마다의 개인적인 가치와 자율성이 극대화 되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개인주의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고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국 유교와 도교 철학이 바탕이 된 동양 사람들에게 행복은 개인의 자율성이 아니라 조화로운 인간관계가 우선입니다. 동양인들에게 개인은 부각되지 않습니다. 개인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특정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으로서의 내가 더 중요시 됩니다. 동양인인 우리들에게 행복은 화목한 인간관계를 맺고 평범하게 사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삼강오륜이니 하는 모든 도덕적 규범들도 관계의 문제들에 집중됩니다. 군주와 백성,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노인과 젊은이, 친구와 친구등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의무를 지닌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하나의 이상향으로 보았습니다. 개인을 중시하는 서양, 공동체를 중시하는 동양, 동양과 서양이 이토록 다른 인간관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시간에 대한 구분에서 기인합니다. 그리스 철학이 바탕이 된 서양의 시간은 태양이 중심입니다. 농업이 주가 아니라 수렵과 목축이 중심이었던 그리스에서는 태양의 질서가 중요했습니다. 해가 떠 있는 하루 단위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시간은 직선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루가 가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낮과 밤 선과 악, 있음과 없음, 곧 이것이 아니면 저것 이라는 이분법적 철학이 거기서 생겨납니다.

하지만 동양의 시간은 순환적 시간입니다. 하루가 아니라 순환되는 절기가 더 중요했습니다. 동양은 농업이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농사일을 위해서는 태양이 기준이 아니라 달이 기준 되는 시간의 구분이 더 유용했기 때문입니다. 달은 태양처럼 뜨고 지는 것이 아니라 차고 기우는 것입니다. 보름이 되었다가 초승으로 기울고, 초승에서 만월로 차오릅니다. 그리고 우주 만물은 그 절기에 맞추어 밀물과 썰물로, 순환되고 회전합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조화의 대상이었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요 조각으로 인식됩니다. 자연스럽게 윤회에 대한 사고가 등장했고 생과 사 마저도 하나의 생명의 순환과정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 순환적 사고는 이미 세상을 떠나 완전히 우리와 단절된 듯한 조상들의 영혼을 돌보는데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명절날 마다, 떠나가신 분들을 가장 먼저 앞세웁니다. 그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이 생명도, 이 신앙도, 그리고 우리의 희망도 존속될 수 잇음을 우리는 미사를 통해 기억하고 만납니다.

오늘, 음력 새해 첫날, 설날의 복음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좋고 준비하고 있어라,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고 말합니다. 허리에 띠를 띤 사람은 일하는 종입니다. 종은 주인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종은 자기 위주로 살지않습니다. 그런 종이 되어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스스로를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가만 보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도 오직 아버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었지 그 어떤 것도 당신 자신을 위해, 당신 자신 위주로 무언가를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보여달라는 바리사이들의 요구에도,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그러면 우리가 믿을께...하는 그들의 요구에도 예수님은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일을 단순히 행하셨습니다. 그런 철저한 종으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그 모습만을 보여주셨습니다. 주인 노릇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종 노릇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급기야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발을 씻겨주며 본을 보이셨습니다. “주인이요 선생인 내가 그대들의 발을 씻었다면 그대들도 마땅히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내가 행한 대로 그대들도 행하도록 나는 본을 보였습니다요한 복음이 전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본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본이야 말로 자기 위주로만 살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 이 세상에, 그래서 갈수록 삭막해지고 갈수록 사람이 사람스럽지 못한 이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감동이 되기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위해 차리는 차례상은 없습니다. 너를 위해 차립니다. 그래서 차례상이 귀한 것입니다. 내 혼자 먹겠다고 차리는 밥상이 아니기에 귀한 것입니다. 그런 밥상이기에 오만 사람이 다 와도 귀한 손님이 되는 것이요 함께 한 솥밥을 나누니 그제서야 다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설날이 온 민족에게 기쁜 경축일이 되는 이유입니다. 이런 설날을 보내고서 다음 날부터 다시 주인 노릇하려고 설치면 그 사람의 한 해는 깝깝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단 앞에 차례상을 모신 것은 바로 십자가 라는 철저한 종노릇 앞에 우리가 머리를 숙이듯, 우리 조상들, 그리고 나와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내가 머리 조아려 나도 종이 되겠노라고, 그야말로 지금 당장 모든 섬김을 실천할 준비를 끝낸 허리에 띠를 불끈 동여맨 종노릇을 하겠노라고 다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이 머무시는 자리는 서로가 서로를 섬기고 서로를 높이는 그곳에 하느님이 드러나십니다. 금년 한 해도 이곳 공동체가 그런 섬김이 가득한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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