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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신적인 권위”
  • 홈지기
  • 2014.01.14 23:29:05
  • 조회 수: 3683

연중1주간 화요일                                                                        이영수 신부님의 강론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보다 악령이 먼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아봅니다. 악령이라고 하느님을 모르고 하느님을 깨닫지 못하는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악령들일수록 하느님을 더 잘 알아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악령인 까닭은 그들이 하느님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분을 알면서도 그분의 뜻은 섬기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악령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고개를 쳐들게 만드는 것이 악의 본질이요 죄의 습성입니다.

오늘 복음은 권위구마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이 두 가지는 결국 하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권위 있는 가르침과 구마의 명령은 똑같이 하느님 나라가 여기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일들입니다.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권위는 무엇입니까? 율법학자들도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사람들을 가르치고 명령하였으며 존중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권위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권위는 분명 달랐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권위는 인간적인 권위가 아니라 신적인 권위였습니다.

악령마저도 단 한 말씀에 쫓겨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강력한 힘, 그런 신적인 권위가 그분에게서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악령을 복종시키는 힘, 마귀마저도 복종 하게하는 그 신적인 권위가 예수님에게 있었고 그 권위를 통하여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가 실현되고 있음을 마르코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실, 말의 힘은 바로 그 실천에 있습니다. 말에 권위가 있으려면 그 행동이 같아야 합니다. 앞에서는 말을 뻔지르르하게 해놓고, 사는 모양새는 형편이 없다면 그는 권위가 아니라 신의마저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곧 바로 실현되는 그곳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바로 여기 이 자리 내가 서 있는 지금, 하느님의 말씀은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곳이 하느님의 나라가 됩니다. 그래야 나는 하느님의 나라에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는 곳, 집과 일터 그리고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현장이 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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