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떠나는 아들에게-
내일이면 길을 떠나는 아들아,
이제야 네게 줄 이 주머니를 꺼내 놓는다.
네가 태어났을 때
먼 동방에서 온 현자들이 네게 주었던 선물을.
그들이 왔을 때
나는 즉시 대단한 손님이 왔음을 알았단다.
갑자기 너무도 환한 별빛이 창밖에서 비췄으니까.
첫 방문객인 목동들은 얼마나 달려왔는지
숨이 목에 차 있었다.
너를 만난 그들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나도 느낄 수 있었구나.
그렇지만
긴 여행으로 지친 남루한 동방의 현자들은
고요하고 경건하게
소중히 간직해온 황금과 유약과 몰약을
자신들의 헤진 옷 속에서 꺼내어
공손히 너에게 바쳤다.
그 때에 나는 이 선물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언젠가 너에 대한 신비가 드러날 때면 주려고
이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 간직해 왔다.
사랑하는 아들아,
잉태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너는 내게 놀라운 보석이었다.
충만하고 투명한 네 존재에 대해
숨기고 싶은 보물.
내일 아침이면
때가 되었음에 길을 나서는 아들아,
이제 동방의 현인들이 준 선물을
주인인 네게 돌려주려고 한다.
이스라엘 왕으로 불러질 너에게 줄 황금을,
반대 받는 표적이 되어 떠나갈
네 육신에 발라질 몰약을,
그리고, 오직 사랑으로만 죄 많은 인간을 구해야하는
하느님의 아들을 위해 피워 올릴 유향을.
이 밤,
머지않아 내 영혼도 칼에 꿰찔리는 때가 오겠지 하며
이 주머니를 새로 짓는 네 옷에 매달고 있다.
아들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 때에도
나는 네 곁에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너의 뜻이 이뤄지길, 모든 것을 마음에 품고 새기면서.
늘 너를 그토록 사랑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2023년 피정 중 1월 8일 주님공현 대축일에)
+나의 하느님은 하느님
이번 연례피정 때 주님공현대축일을 맞이하여 쓴 시입니다. 동방에서 온 현인들이 준 선물을 어떻게 했을까를 묵상하다가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어머니들이 여전히 계시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