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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부활 제 6주일(2024년 5월 5일) 이영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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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5 23:48:09
  • 조회 수: 503

부활시기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행적인 요한복음 13장의 세족례 후에 이어지는 14장에서 16장까지의 긴 고별담화를 봉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지난 주일의 고별담화에 바로 이어져 나오는 부분으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더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새로운 점은 예수께서 하시는 내 안에 머물라는 말씀이 결국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그냥 단순히 내 사랑 안에 머물라’,‘내 계명을 지켜라’,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매번 당신의 예를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서로 사랑하라말씀에는 앞뒤에 말씀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즉 앞에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말씀이 덧붙여 있고, 뒤에는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말이 덧붙여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생명까지 내놓으시며 제자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이야말로 제자들의 형제 사랑의 근본 동기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첫 번째 제자가 될 두 사람, 시몬을 게파로 부르시는 이야기에서 이 머물다는 요한복음의 핵심단어가 나옵니다. 성사에서 제자라는 단어는 사실 그분과 함께 머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가난한 이들을 환영하고, 어떻게 힘없는 이들과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이 이 땅에 예수님의 꿈인 하느님 나라를 세워 모든 이들을 당신의 집으로 초대하고자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 잡히시는 마지막 밤,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마지막 긴 유언의 말씀인 고별담화를 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머물고 사는 것은 그분 안에 우리 집을 만드시도록 허락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안에 그분의 집을 만들도록, 예수님 안에 우리 집을 마련한다는 이 단어는 계속해서 의미가 확장되어,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하시며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려 간다하시며 너희 마음이 살란 해지는 일도 겁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하십니다.

 

요한복음은 집에 대한 비전으로 시작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하십니다. 여기에 강생, 성육신의 핵심인 집, 머물러 살아가는 안식처인 집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반복해서 내 안에, 내 사람 안에 머물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의 집에 사는 진정한 가족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하십니다. 그러니 이제 너희는 종이 아니라 나의 친구다. 너는 내가 하는 일보다 더 큰일을 할 것이다.” 하십니다. 정말로 우리가 오늘 들어야 할 말은 하느님의 가족으로 살도록 초대받았다는 말입니다. 친밀한 교제 가운데 들어가도록 초대하셨습니다. 영적 삶이란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깊은 뜻은 우리가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르고 그래서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가 기쁨으로 충만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 살며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의 큰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하느님의 빛은 모든 어둠보다 더욱 실재적이며 언제나 마지막 승리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믿는데서 기쁨은 실제적이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선언하신 부활의 믿음은 세상이 아무리 어두움으로 덮여있을지라도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우리가 기쁨을 맛볼 수 없다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이 없다면 우리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질 수도 십자가를 통하여 얻는 부활의 기쁨도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머무른 것과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것은 발을 씻기는 것, 즉 겸손하게 그들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 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선택했다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벗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의 처지가 아무리 고달프고 외롭다 해도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처지에서 우리를 벗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이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내 벗이요 그분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아무 부족한 것도 없고 부러울 것도 없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살리지만 미움은 사람을 죽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을 하면 남도 살리고 자신도 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움으로 남을 죽이면 자신도 역시 죽이게 됩니다. 따라서 서로 사랑하도록 합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계명이며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머물러 사시기 위해 오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특히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 때 연약한 사랍들에게 사랑, 친절, 용서, 애정을 나눌 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을 들어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줍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은 고별사의 결론의 말씀이고 요약이십니다.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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