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씨튼 수녀회

사순 제4주일(2024년 3월 10일) - 김경민 판그라시오 신부님
  • 홈지기
  • 2024.03.10 23:43:37
  • 조회 수: 477

요한 3,14-21

 

눈부처라는 말이 있다.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을 가리킨다. 눈이 마음의 거울이라면 눈부처는 그 마음에 담긴 사람의 모습이겠다.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또 넘쳐흘러 우리 몸에까지 새겨진 그런 사람의 얼굴이겠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함께 한 제자들의 눈에 서려 일렁이기는 했겠으나 그들의 눈부처까지는 못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을 자기 눈에 담지 못했다. 무서워 얼어붙은 마음에 예수님은 눈부처의 그림자도 되지 못했다. 오직 한 사람, 요한 사도는 달랐다. 요한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직접 보았다. 서기 3047일 파스카 축제일 전날 금요일 골고타 언덕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모든 수난의 시간을 두 눈에 똑똑히 담았다. 그분이 당하셨던 모욕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겼다. 옛 사람들이 가장 끔찍하고 치욕스럽게 여겼던 십자가 형벌을 당하시는 자기 주님 곁에 끝까지 머물렀다. 목전에 벌어지고 있는 이 엄청난 일의 의미를 정신이 미처 다 처리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도망치지 않은 두 발, 감지 않은 두 눈 덕분에 예수님은 요한의 눈부처로 남았다.

 

그때 그 순간 요한의 눈에 비친 예수님 최후의 시간들은 다른 세 복음서 저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수님께 벌어진 사건의 의미를 읽어내게 했다. 모든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필연성을 예고하셨다. 그러나 공관 복음서가 십자가의 모욕, 고통, 수난으로 가리키는 일을 요한 복음서는 들어 올려짐’ ‘영광받으심이라고 부른다. 사실 요한은 자기 복음서의 맨 첫 장부터 이 단어를 썼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요한의 눈동자에서 눈부처가 되신 예수님은 이제 다른 것이 될 수 없었다. 요한에게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니 시작이 없던 때부터 영원까지 그분은 하느님의 영광이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사람의 아들은 들어 올려져야 한다.” 실제로 예수님은 나무에 달려 땅에서 들어 올려지지만, 요한에게 이것은 물리적 현상을 넘어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들어 올리심이다. 영광 속에 그분의 정체가 드러나심이다.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 그 사건의 의미를 열어 보이신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내 육신을 십자가에 매단 뒤에야, “내가 나임(ego eimi)을 알 것이다”(요한 8,28), 그러니까 내가 하느님과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나라는 말씀은 저 옛날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느님 친히 모세에게 밝히신 이름이다. “나는 있는 나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요한 사도의 이러한 시각은 우리 눈에 겹겹이 쌓인 습관의 더께를 걷어내고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를 똑바로 바라보게 해 준다. 십자가는 형벌이었으나 동시에 하느님 사랑이 펼쳐지는 방식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십자가 위에서 죄 없으신 분이 홀로 버려진 채 죽었으나, 그것은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이 가장 큰 사랑임이 찬란히 드러나는 영광의 자리였다(요한 15,13).

 

한낱 모조품에 불과했던 광야의 구리뱀도 치유의 표지가 되었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죽음을 불사한 사랑의 표징은 얼마나 더 큰 구원의 힘을 지니고 있겠는가. 사람의 아들이 들어 올려지는 것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표징이다. “외아들을 내주실만큼,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주실 만큼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증거이다. 이 사랑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이 사랑만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눈에 눈부처로 남길 바라신다는, 사람에게서 오래도록 상처 입으신 분의 진실한 마음이다.

 

죽음의 저 안쪽에서 터져 나오는 이 사랑의 이야기, 죄와 어둠의 오장육부를 가르며 솟아나는 이 영광의 이야기가 요한이 마지막까지 눈에 담은 바로 그 이야기였다. 예수님은 이렇듯 십자가로 하느님 사랑을 한 번에 전부 이야기하셨고, 세상 끝 날까지라 해도 다 헤아려지지 않을 그 풍요로운 이야기의 숲길을 오늘도 성령의 이끄심 아래 걸어가 보자.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