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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사순 제3주일(2024년 3월 3일) - 이영수 신부님
  • 홈지기
  • 2024.03.05 23:18:33
  • 조회 수: 1486

은총의 시기인 오늘 사순 제3주일은 성전 정화사건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4 복음서에 모두 등장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공관복음에서는 복음의 끝자리에 배치하여 이 사건이 마치 예수님 십자가 죽음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드러나지만,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복음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복음서의 도입 부분에 배치를 합니다. 사실 성전은 그 당시 하느님이 사람들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건물입니다. 요한복음사가는 앞으로 펼쳐질 예수님의 모든 일 예수님 생애의 모든 말씀과 사건들이 바로 이 성전 정화의 의미를 확대시키신 것, 곧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를 새롭게 정리하고 세워 가신 기간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성전 정화사건을 공생활 초기에 배치한 것입니다.

 

오늘 아침, 유대인의 지도자들의 불의에 대한 에수님의 진노는 곧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열정과 특히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나타났습니다. 또한 성전은 모든 이를 위한 집인데 이교도들이나 이방인들은 얼씬도 할 수 없는데 분개하였습니다.

 

성전은 인간의 뜻과 인간의 판단이 아니라 오로지 아버지 하느님의 뜻과 판단이 명확히 서는 자리어야 합니다. 사실 이곳에서 유대인들은 하느님께 귀 기울리고 하느님의 사랑이 담긴 계약의 정신에 충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을 장사하는 곳으로 바꾸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가득한 열정이 가득하여 채찍을 드신 예수님은 엉망이 되어버린 거룩한 장소를 보고 참아 참으실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사제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 하늘의 뜻이 아니라 땅의 계산이 앞서게 되면 그것은 이미 성전이 아닌 시장 좌판이 되고 돈이 중요시 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성전에 봉사하는 사제들의 권위와 우월감도 높아졌을 것이며 따라서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의미는 희석되고 성전은 사제들의 권위를 나타내고 그들의 잇속을 챙겨주는 건물과 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돋보이게 되고 물질이 중요시되는 곳에 하느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성전에 채찍을 드신 것입니다. 그저 작은 소동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분은 죽음을 각오하고 기어이 일을 저지르십니다. 이것은 하느님께 대한 모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오로지 사랑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랑 하나를 위하여 생명을 받치시고 생명을 섬기시고 생명을 베푸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전의 거룩함에서 그분 몸의 거룩함으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어 우리 안에 당신의 장막을 치십니다. 이 새로운 성소는 당신의 살과 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집이 도둑의 소굴이 된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시고 화가 나신 예수님은 성전이 된 인간의 몸을 더럽히는 것에 대해서 더 화가 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허무시오.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소.”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어서 해석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을 생각하고 비로소 성서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라고 전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신앙인들은 성찬의 빵을 예수님의 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하느님은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성전 안에 계시지 않고 예수님의 몸인 성체성사 안에 살아 계신다는 자신들이 믿음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유대교 신앙을 쇄신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노력은 십자가의 실패로 끝났지만 교회 안에 시작된 성체성사와 그것을 먹고 마셔서 예수님의 생명을 실천하는 사람들 안에 그 쇄신은 이루어졌습니다. 성체성사는 스스로 내어주고 쏟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일을 기억하고 실천하게 하는 성사입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이 실천 안에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하느님은 성전 안에 계시지 않고 스스로 높다고 생각하는 제관들과도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일 곧 그분의 선하심과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들 안에 하느님은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이 세상 속에 또 하나의 교회요, 성전이 된 우리의 목적이 정확해졌습니다. 이 몸을 성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이 몸을 교회답게 보살펴야 합니다. 성전이 하느님을 만나는 공간이라면 내 몸을 교회답게 보살펴야 합니다. 교회가 하느님이라는 끈을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으며 가난한 이들과 나눔을 실천할 때 우리 성전은 바로 살아계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표지요 성사가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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