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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대림 2주일 (2021년 12월 5일) - 이영수 신부님
  • 홈지기
  • 2021.12.09 19:55:24
  • 조회 수: 793

 

                                               사본 -Candle.jpg

대림 2주일 다해

 

오늘은 대림 제 2주일 인권주일입니다. 사람은 존재 자체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피조물임을 자각하는 날입니다. 신분 국적 빈부를 초월해서 어떤 인간이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특별한 관심과 기도가 필요한 주일입니다. 은혜로운 대림시기 둘째 주일을 맞이하면서, 인간은 하느님 앞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고, 우리 모두가한 형제임을 깨닫는 인권 주일이었으면 합니다.

 

대림시기는 희망이 있고 바람이 있기에 다시 한번 내 생애의 숨길을 새로운 탄생으로 보듬어 내고자 하는 그런 기다림이 있는 은총의 시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탄이라는 기점을 통하여 우리들이 회계를 삶을 향해 거듭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대림 둘째 주일에는 회계라는 말씀과 함께 두 번째의 촛불을 밝힙니다. 성탄은 메리 크리스마스로 끝나 버리는 축제일이 아닙니다. 성탄은 새롭게 살고, 거듭나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초대이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림시기를 시작하며 재단 앞에 보랏빛 촛불을 밝히는 것은 그런 기다림과 희망에 관한 상징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다시 희망, 기다림, 믿음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들이 다시금 우리 안에 굳건히 자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습니다.

 

매년 우리가 성탄을 기다리며, 성탄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의 무디어진 마음들이 하느님 나라, 그 길을 걸어감에 있어 늦추지 말고, 희망을 버리지 말고, 변하지 말 것을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이끄시고 약속을 지키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진정한 별이요, 또 우리가 평생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 안에 환하게 떠 있는 그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우리에게 다시 대림절이 있습니다.

파수꾼이 성벽의 높은 망루에 올라 동이 떠오르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바라보듯이, 그렇게 이스라엘의 많은 예언자들은 메시아의 도래할 마지막 때를 고대하였습니다. “나는 주님을 바라보고 내 구원의 하느님을 기다리리라.”던 소망을 모든 예언자들의 바람이 결국 구원의 마지막 예언자인 요한의 외침으로 대림 둘째 주일에 막을 엽니다.

 

루카 복음이 요안에 대해 전하는 말씀에서 우리는 평범하지 않은 시대의 증언들을 듣게 됩니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로부터 시작하여 네 권역으로 갈라진 발레스티나의 영주들과 대사제 하나스 와 가야파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권력자들이 나열되는 그 시대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가 광야에서 외치는 예언자가 나타납니다.

 

오늘 복음은 분노와 절망, 혼란과 갈등이 소용돌이치고, 분노를 속으로 감내하며 메시아를 기다리던 황량한 그 시절에, 몸에 낙타 가죽 옷을 걸치고 메뚜기와 꿀을 먹으며 광야에 살면서,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계의 세례를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힘과 진실을 담아 하느님의 말씀을 외치면서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가 언덕은 낮아져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라고 희망을 선포하십니다.

 

골짜기가 무엇이고 산과 언덕들이 무엇입니까? 내 마음에 얼마나 많은 골들이 있습니까? 내 마음에 터무니없이 솟아 있는 나만 잘난 마음들이 태산처럼 솟아 있지 않습니까? 굽은 대로 굽은 배배 꼬인 마음, 미움과 상처와 분노와 욕심 때문에 거칠어진 마음들을 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 탄탄대로 만들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시는 하느님의 구원을 일찌감치 맞이할 수 있으리라 약속하십니다. 대림 두 번째 초가 다시 켜 줬습니다.

 

그러므로 대림을 통해 우리는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아기 예수의 구유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겸허를 하느님의 자기 비움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들어오시기 위하여 얼마나 스스로를 낮추셨는가를 하느님 구원의 방식을 깨닫는 믿음의 눈을 뜰 것을 요청받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가장 비천한 곳에, 가장 낮은 추워진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에 대하여, 이 대림 시기에, 그 하느님의 방식을 제대로 깨달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구유는 바로 우리가 잃었던 것을 되돌려 주시는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소유의 방식이 아니라 비움의 방식으로, 높아짐의 방식이 아니라 낮아짐의 방식으로, 강함이 방식이 아니라 약함의 방식으로 이김에 방식이 아니라 짐의 방식으로 환골탈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때문에 인생을 다르게 살고 예수라는 이름 때문에 나의 가치를 바꾼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더 작아져야 하고 그분은 더 커져야 합니다.” 오늘 아침 세례자 요한의 광야에서 외친 소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비우고 작아지고 약해지는 일, 오실 분을 맞아드릴 준비를 서두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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