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하면 60년 전 1960년,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지질히도 궁색하고 가난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비행기는
고사하고 목포에서 서울까지 기차로 가는데도 15시간이 걸리고, 광주에서 순천까지 버스로 4시간이
걸리던 그 시절, 미국에서 배를 타고 고된 여정 끝에 한국에 도착하신 네 분의 수녀님들이 목포 북교동 성당
수녀원 한 칸을 빌려 둥지를 틀고, 한국말을 배우며 사도직을 준비하던 1960년도 11월부터 1962년
11월, '씨튼 까리따스 수녀회'로 강진 공동체를 시작하던 바로 그 시절, 저는 목포 북교동 성당에서
신학생으로 겨울과 여름 방학 기간 2년 동안, 매일 가까이에서 수녀님들을 뵙던 기억이 새삼 새롭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원장수녀님과 노린 수녀님, 말틴 수녀님, 티모티 수녀님, 이름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수녀님과의 인연으로 오늘 저는 이 귀한 시간을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렵고 가난한 이를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았던 사랑의 씨튼 수녀회 창설 150주년, 한국뿌리내림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회갑의 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100년을 한 주기로 보고 그 절반인 50년을 금경축으로, 25년을 은경축으로 기리지만,
동양의 시선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여기며, 하늘을 우러르며 살았던 동양인들은 180년 만에 모든
행성들이 일직선으로 도열을 하는 ‘주기’를 발견하고, 이를 ‘셋’으로 나누어 ‘오운육기’를 바탕으로
‘60갑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 인간이 60 갑자를 돈다는 것은 그야말로 둥글둥글한 모든
행성과 그 흐름처럼 한 사람의 인생도 60갑자를 도는 사이, 모나지 않고 유순해짐을 기뻐했고 이웃들을
불러 이 날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자님도 논어에서 예순을 ‘耳順’ 귀가 순해졌다라고 해서 태어난
지 60년 되는 날을 회갑, 환갑, 이순이라 하고 이날을 기억합니다.
성서에서는 7일을 안식일로, 7년 되는 해를 안식년으로, 그리고 안식년을 7번하고 그 다음해 50년 되는
해를 희년으로 정해 창조 질서의 원형으로 다시 되돌리는 기쁨의 해를 보내게 하여, 하느님은 끝없는
시작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작하는 한국의 진출 60주년 희갑을 여는 오늘,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하느님의 섭리에
감사드리며,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첫 마음으로, 의미있는 한 해를 보내고자 합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다시 새 날을 시작하려는 이 뜻깊은 날 아침,
이 시간에 이사야 예언자는 오늘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주십니다.
“너를 만드신 분 모태에서부터 너를 빚으시고 너를 도우시는 분,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목마른 땅에 물을, 메마른 곳에 시냇물을 부어 주리라. 너희 후손들에게 나의 영을, 너의 새싹들에게 나의 복을 부어 주리라.“ (이사야 44,2-3)
‘보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련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이사야 43,19)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지금 여기에서 다시 새 일을 시작하려 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처럼. 그리고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처럼, 다시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실로 부름 받은 자의
길은 세상의 빛으로서의 십자가의 길이긴 하지만, 가장 보람 있고 가치 있고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하고 가장 풍요로운 삶, 영광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여러분은 하느님이 뽑아 주신 사람들이고 하느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임을 다시
일깨워 주십니다. 예수님이 오늘 복음의 사명선언문 혹은 출사표라 일컫는 말씀에서 밝힌 대로 이제
그분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이고, 잡혀간 이들이고, 눈먼 이들이며, 억압받는 이들이니,
너희도 바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기로 작정하라 다시 이르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는 일이라 설정하셨듯이 우리는 2020년 한 해를 은혜로운 해로 다시 설정하려고
합니다.
"왜 사랑의 씨튼 수녀회의 일원으로 살고자 하십니까?"
예수님의 그 사명에 동참하기 위해, 예수님의 삶을 나도 따라 사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큰 기쁨이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살아, 여기 하느님 나라를 열고 싶어서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한국의 현헤롤드 주교님께서 목포에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씨튼 까리따스 수녀회를 초대하셨습니다.
당시 총장수녀님은 오랫동안 생각하거나 토론하지 않고 즉시 "네, 보내겠습니다."라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총장수녀님은 지원자를 받았는데 173명의 수녀님들이 자원했고 4명이 선택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미개했던 가난한 나라를 돕겠다는 심성이 창설자 성녀 엘리사벳 씨튼 수녀님을 닮았습니다.
옛날 수도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곰팡이 냄새가 나는 오래 된 책을 읽고 있고있었습니다. 이들은
그 책에서 이 세상의 맨 끝에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자 하느님 나라가 시작 되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는
글귀를 읽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을 찾아 나섰고, 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게 다는 각오를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무수한 위험에 부딪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면서 세상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모든 유혹도 뿌리치고 그곳에 들어가는 문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문을 두두리고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문 안으로 들어갔을 때 자신들의 고향집, 곧 수도원의 방에 서있는 자신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놀라 서로 마주 쳐다보았습니다. 그 순간 깨달음이 열렸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하느님의 나라임을, 하느님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은
너와 네 안에 계시고 그분이 계시는 곳이 하느님의 나라임을... 우리가 당장 바라면 이곳이 하느님 나라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가 되게 합시다.
다른 모든 이를 위하여, 존엄성이 짓밟히고, 무능하고, 착취당하고, 상처입고, 억압당하고, 굶주리고,
장애를 입고, 실직당하고, 피난살이하고, 상처받고, 고통당하고 슬퍼하며 눈물 흘리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나를 그들의 일부로 쓰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의탁하고 나에게 남겨진 시간을 쓰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진정한 영성은 하느님께로 우리가 부름 받은 소명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이웃의 필요를 헤아려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상처받은 우리 세상에 사랑과 정의를 증거하고, 빈곤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옹호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우선적인 봉사와 화해의 모범을 살며, 지구를 회복시키고 보존하는 일”에 도움이 되어주는 삶을
살아갈 각오를 새롭게 다시 다짐하며, "겸허ㆍ소박ㆍ사랑,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지향을 가지고, 이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재를 다시 살아가십시다. 늘 어려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안에서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십니다.”
로핑크 신부님의 <따름의 무거움과 가벼움>이라는 글의 마지막 말씀이 오늘 따라 실감납니다.
“삶은 하느님 것에 대한 순전한 감사와 순전한 기쁨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참여했던 피정 강론에서 에르메스 론키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꿈은 십자가를 진 남녀노소의 거대한 행렬이 아닙니다. 착하고 기쁘고 활기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렬입니다. 제가 믿는 하느님은 가나 혼인잔치의 하느님, 유쾌한 사랑 넘치는 축제의
하느님, 술을 마다하다 않으시고, 베타니아 시몬의 집에서 한 죄녀의 향유를 좋아하시며, 연희를 즐기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존재의 기쁨과 신앙의 기쁨을 주시는 하느님입니다.”
끝으로, 한국을 방문하신 교황님이 수도자들과 만남에서 들려주신 말씀을 다시 빌어 60주년을 여는
축하의 말씀으로 대신합니다.
“타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보여 주는 만질 수 있는 표징이며 천국의 영원한
기쁨을 앞당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증거가 기쁨에 찬 것이어야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끌어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오늘부터 시작되는 회갑 년을 여는 금년 한 해가 기쁨이 넘치는 축재의 나날이 되시기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