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에 이야기 되는 한국 학생과 학부모들의 꿈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지요.
아이가 태어나면 천재가 되라고 아인슈타인 우유를 먹이고 좀 커서 초등학생이 되면 서울대에
가라고 서울우유를 먹이고, 중학생이 되면 연세대라도 좋다고 하여 연세우유를 먹인다고 합니다.
마지막 고3때는 제발 학교 출석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며 매일우유를 먹인다고 합니다. 극성스러운
한국 엄마들을 재미있게 표현한 유머이지만, 이 안에는 경쟁 가운데 우열을 나누고 그 안에서
성공하고 싶어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의 욕망을 봅니다.
사제직으로 양성 받고 있는 신학생들과 같이 살면서 느끼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경쟁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신학교에 들어와서도 뭔가 자신의 능력, 역량, 재능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학생들을 봅니다.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닌데, 그걸 전부로 여긴 나머지 하느님은
배제된 채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어떤 성과만을 내려고 애처롭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없이 자신의 힘과 자신의 능력만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교만일까요?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자칭 의롭다는 바리사이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는 세리의 비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리사이가 보이는 모습 안에서 하느님 없이 자신의 의로움만 자랑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봅니다. 바리사이라는 말 자체가 ‘분리된 자’, ‘구별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원전 2세기 중엽부터 율법에 대해 보다 엄격한 해석과 실천을 하여 다른 유다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지요. 복음에서 바리사이는 기도할 때 꼿꼿이 서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혼잣말로 기도하기를 ‘다른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은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라고 구분합니다. 그러한 일반 사람들은 강도짓을 하고, 불의를 저지르며, 간음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서 있는 ‘저 세리’와도 자신은 같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바리사이 한 사람이 기도하며 그는 철저히 여러 사람과 구분 짓고 벽을 쌓지요. 이 기도는
하느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그의 기도 안에는 철저히 자기 자신만 있지, 하느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 하느님을 차단하고 배제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단식도 하고 있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도 열심히 바치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꼿꼿이 서서 기도하는 바리사이와는 반대로 멀찍이 서서 기도하는 세리는 자신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며 바리사이와는 다르게 서로 대조된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하늘을 향해 눈도 못 듭니다.
그리고 가슴을 치며 말합니다.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쌍히 여기다’는 이 말은
무엇인가를 ‘가려주고, 덮어주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는 자신의 죄를 덮어주기를 청함으로써
속죄의 행동을 함을 말합니다. 그의 기도 안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종교 행위에 대한 우월적인
과시 행위도 없었습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청원도 없었습니다. 단지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기도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향은 오로지 하느님께로만 향해 있습니다. 이런 맥락은
제1독서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나오는데요, “뜻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이는 받아들여지고, 그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라고 합니다. 가진 것이 없이 가난하고 힘 있는 자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하느님께 보다 더 가까이 있는 그 이유는 그들이 온전히 하느님께 향해 있어
그렇습니다. 제2독서에서는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어떻게 보면 전직 바리사이였던 바오로의
고백이 나옵니다. 구원의 열쇠와 구원의 주도권은 하느님님께 있는 것이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요즘 행복에 대해 묵상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행복을 찾고 있으며 자신이 바라는 행복이
서로 다 다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바로 하느님과 함께 있음으로 얻게 되는 행복입니다. 복음의
바리사이처럼 내가 무엇을 했다는 것, 어떤 것을 이루었다는 것. 여기에 행복을 느낄 수도 있지만
좀 더 성숙한 신앙으로 가기 위해서는 바로 내가 이룬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
이루신 일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직자나 수도자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복을 받은 것이 아님을 저는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오히려 무엇을 잘 할 수 있다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하라고
하기에 어쩌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인해 본인이 더 피곤해질 때가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 밝히지 않는다면, 엄청난 교만에 빠지게
되지요. 그 결과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다 이룩해 놓은 것처럼 알고 그 착각 가운데 말하고
행동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것이기에 그 영광은 하느님께 돌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신이 이루어놓았으니 자신의 것이라며 그로 인해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 할 때,
자신이 가고자 하는 성소의 길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내가 살아 있고, 내가 받은 모든 것이 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깨달으며 지냈으면 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의 말씀,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내가 쉬고 있는 숨조차도 내 숨이 아닌 하느님의 숨임을
느끼며 지낼 수 있는 오늘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