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로 7번이나 계속 이어지는 마태오 복음
13장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진노의 천둥소리"라 불리워지는 무서운 진노와 격분의 말씀들입니다.
여기서 특히 위선자란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는 엄격한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단히 철저히 구원을 위한 계명 이행을
살아낸 사람들입니다. 종교적 기준으로 십일조를 바치고 꼬박꼬박 단식을 하며 철저히 기도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것은 당연한 듯 보입니다.
그와 달리 십일조도 하지 않고 단식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허구헌날 죄인들과 놀아나는 예수님은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한 가증스런 인물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아랑곳 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지금 구원의 룰을 잘 지키고 있는 그들을 향해 도리어 독설을 퍼부으십니다.
이미 너희들은 불행하다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살아도 산 목숨들이 아니라고 경고하십니다.
왜 그런가요? 예수님은 무엇을 기준으로 그들에게 이런 혹독한 경고를 쏟아내십니까?
예수님은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를 채워야 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종교인은 행세하지만 신앙인은
살아냅니다. 종교인은 그냥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결판나지만 신앙인은 그 믿음을 사느냐 살고 있지
않느냐로 판기름 납니다. 믿으면서도 살지 않는다면 그는 여전히 그냉 종교인입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행동과 실천으로서 자신의 종교를 이야기 하는 사람입니다. 내 스스로 나의 종교를 실천하고
나의 믿음을 대단히 구체적으로 살아내지 않는다면 우리도 결국 종교인, 오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에
불과합니다.
어제 들었던 말씀,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라는 이 교훈을 다시 되새겨보고 싶은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