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로 시작한 이 복음은 7번이나 계속 나옵니다.
율법학자와 바라시이는 엄격한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단히 철저히 구원을 위한 계명 이행을
살아낸 사람들입니다. 그와 달리 십일조도 내지않고 단식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허구헌 날 놀아나는
예수는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한 가증스러운 인물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지금 구원의 룰을 잘 지키고 있는 그들을 향해 독설을 퍼부으십니다.
이미 너희들은 불행하다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라고 경고하십니다.
왜 그런가요?
예수님은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로 채워져아 한다는 소리입니다.
종교인은 그냥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결판나지만 신앙인은 그 믿음을 사느냐 살고 있지 않느냐로
판가름 납니다. 믿으면서도 살지 않는다면 그는 여전히 그냥 종교인입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행동과
실천으로써 자신의 종교를 이야기 하는 사람입니다.
내 스스로 나의 종교를 실천하고 나의 믿음을 대단히 구체적으로 살아내지 않는다면 우리도 결국
종교인, 오늘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 불과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껍데기입니다.
더욱 불행한 것은 그런 자들의 삶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구원으로 이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의 독설에서 제외될 길이 없습니다.
어제 들었던 말씀, "보라 지금은 꼴지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라는 이 교훈을 다시
되새겨 보고 싶은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