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씨튼 수녀회

성 금요일-이영수 신부님 강론
  • 홈지기
  • 2018.04.01 00:28:25
  • 조회 수: 1134

 

오늘은 그 어떤 성사도 행해질 수 없는 날입니다. 성사의 주인이 아니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일 년 중 미사가 공식적으로 없는 유일한 하루입니다. 미사의 제물이 아니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성사도 없이, 주님이라 부르는 그분은 

캄캄한 돌무덤에 안치한 그 제자들의 절망과 낙담만을 드러내는 오늘,

이 성 금요일의 슬픔을 이해인 수녀님은 "성 금요일의 기도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오늘은 가장 깊고 낮은 목소리로 당신을 부르게 해 주소서.  
더 많은 이들을 위해 당신을 떠나 보내야 했던
마리아의 비통한 가슴에 꽂힌 한 자루의 어둠으로 흐느끼게 하소서. 
배신의 죄를 슬피 울던 베드로의 절절한 통곡처럼
나도 당신 앞에 겸허한 어둠으로 엎드리게 하소서 .
죽음의 쓴잔을 마셔 죽음보다 강해진 사랑의 주인이여 
당신을 닮지 않고는 내가 감히 사랑한다고 뽐내지 말게 하소서. 

오늘 그분은 가셨고 우리는 여기 남았습니다. 십자가는 그분 삶의 결론이요 완성입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의도는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다운 세상, 살맛 나는 세상, 행복이 가득한 세상,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타인을 위해서 생명을 바친 예수님의 투신을 표현한 것이기에

십자가는 사랑 그 자체입니다. 

 

피땀을 쏟으면서도 저 십자가를 선택하신 것도 오직 사랑이요, 숱한 매질과 침뱉음, 능욕과 모욕을

감당하게 만든 것도 오직 사랑이요, 세개의 못이 손발을 뚫고 나와 죽기까지, 모든 피를 죄다

쏟아 붓게 만든 것도 오직 사랑입니다.

사랑, 어느 정도의 사랑입니까?

벗을 위하여 나의 목숨을 바치는 정도의 사랑이요,

원수를 위하여 나의 목숨을 바치는 정도의 사랑이고, 지금 나를 죽이는 저들을 위하여

죽어가면서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바쳐주는 그 정도의 사랑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 십자가에 짐승처럼 매달린 한 사람의 이 한마디로 인하여 수천년 이어져 오던

그 악의 순환고리가 끊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고 도리어 나의 죽음으로

대신 갚아낸 그 사랑이, 사람들을 짓밟던 엄청난 무게의 복수의 돌덩이를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보복과 악의 악순환 고리를 잘라버렸습니다.

 

십자가는 그런 사랑입니다.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만을 골라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사랑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사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힘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부정의 힘,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힘, 폭력의 힘입니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협잡을 꾸미게 만드는 힘입니다. 이런 힘 위에 놓인 사람이게 중요한 가치는 오로지 강한 것, 많은 것,

큰 것, 힘과 능력입니다. 이렇게 부정의 힘으로 똘똘 뭉친 사람은 나의 부정함과 약점을 감추기 위해

곧잘 남의 허물을 드러내고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고 몰아세우고 남을 죽입니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힘 하나가 등장했으니 그것이 바로 긍적의 힘, 남을 위한 십자가의 힘,

비폭력의 힘입니다. 아무런 죄없는 존재가 남을 위해서 단죄를 받고 고통을 받고

급기야 죽음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가 남긴 사랑의 힘이 드디어 악을 쳐이기기 시작합니다.

연민과 사랑은 다른 사람도 살리고 나도 살리는 길입니다. 분노와 배반, 미움, 보복이 전부인 줄

알았던 세상에 섬김과 나눔, 봉사와 희생이 가능하게 만든 길입니다.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소유의 방식이 아니라 비움의 방식으로, 높아짐의 방식이 아니라

낮아짐의 방식으로, 강함의 방식이 아니라 약함의 방식으로, 이김의 방식이 아니라 짐의 방식이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십자가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무죄한 이로써 몸소 가장 비참한 죽음을 안으시면서 그 죽음을 통해 세상의 죽음,

세상의 악을 쳐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의 힘입니다. 십자가의 방식입니다.

 

세상은 이겨야 사는 곳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죽어야 사는 곳입니다.

세상을 가져야 사는 곳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놓아야 사는 곳입니다.

세상을 성공해야 사는 곳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실패해야 사는 곳입니다.

세상을 고통을 피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눈물을 삼키는 곳입니다.

세상은 나를 위해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남을 위해 기도하는 곳입니다.

세상은 나 살자고 남을 죽이지만 십자가는 남이 살도록 내가 죽는 곳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어리석음의 승리를 기원하는 오늘 우리는 이 전례 중에 저 십자가를 향하여 허리숙여 절을

할 것입니다.  이 절은 그저 일 년에 한 번 분향하고 끝내버리기 위한 절이 아닙니다. 당신의 죽음이

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듯이 나의 죽음이 내 이웃과 내 가족들에게 구원과 생명의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그렇게 나도 당신의 뒤를 따르겠노라는 다짐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경배하는 것은 십자가의 처참한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저 십자가를 통해서라도 우리를 사랑하고자 하셨던 하느님의 그 사랑을 기념하는 것이요,

우리가 저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것 또한 이미 우리를 위하여 그 피의 값을 톡톡히

치루어 내신 아버지의 사랑에 전적으로 내 자신을 의탁드려야 함을 깨우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저 십자가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뿐입니다.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이 세상을 향하여 우리는 말해야합니다.

이 세상을 이기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로 저 십자가에 대한 믿음입니다.

 

오늘 성 금요일 전례는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관조하면서 우리의 구원의 근원이요 종착지인

사랑의 신비를 침묵 중에 관조하고 흠숭하며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아멘

 

 

이 게시물을

번호
제목
파일
작성자
날짜
조회 수
323
2018.04.04
조회 수: 519
2018.04.04
519
2018.04.01
1134
321
2018.03.29
조회 수: 1264
2018.03.29
1264
320
2018.03.26
조회 수: 1282
2018.03.26
1282
319
2018.03.26
360
318
2018.03.25
조회 수: 425
2018.03.25
425
316
2018.03.12
440
315
2018.03.04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