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일(나해)
그토록 아름답던 단풍이 모두 닉엽 되어 떨어지고, 이제는 산과 들에 생명의 빛이 사라져가는
겨울과 함께, 흘러간 일 년의 세월을 마무리하는 올해의 마지막 달, 기다림의 대림시기를 다시
맞습니다.
오늘은 대림 첫 주일, 교회 전레력이 시작된는 날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오실 것을 기다리며 살던
하느님의 백성들의 오랜 기다림의 세월을 기억하면서, 깨어 기다리며 살아야 할 우리 신앙생활의
의미를 다시 상기시켜주는 시기입니다. 기다림은 절망에 빠져있는 때에도,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과 힘을 가져다줍니다. 신앙인의 삶 역시 기다림의 삶이고 희망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의 묵시록’이라 불리는 마르코 복음 13장의 종결부입니다.
11장과 13장은 성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그의 죽음은 그가 벌린
운동이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구성된 권위와 갈등을 빚었기 때문입니다.
마르코 복음 13장의 대미를 장식하는 오늘 복음은 종말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깨어 있어라”는
요청으로 마무리합니다. 이 "깨어 있음은 육신적 의미에서의 잠들지 않는 것을 뛰어넘어 하느님이
시작하신 구세사의 완성에 대해 온전히 집중하여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반대로 “잠들어 있음”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마치 하느님이 없는 듯이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메시아를 기디리는 교회 공동체는 이렇듯 종말에 대해 "깨어 있어라” 는
예수님의 요청으로 그 첫 주간을 맞이합니다. 목적지를 주시하며 자신을 준비하는 “깨어 있음’’ 이
대림을 맞이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가장 올바른 영적 태도라고 오늘 복음은 간곡히 가르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그분을 알아본 사람들은 몇 사람 되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를 알아보고 그분올 맞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20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십니다. 오늘날도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준비의 핵심은 ‘회개’ 입니다.
"깨어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회개하라는 절박한 호소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난 사건 중에 가장 큰 사건은 한 마디로 성전의 붕괴와 유배였습니다.
하느님 현존의 장소인 성전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그들의 근본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성전의 붕괴가 그들에게는 더 큰 어려움과
시련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이제 성전도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배는 단순하게 정치적 억압, 그 이상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희망을 갖지 못한 인간은 더 이상 존재의 의미와 이유를
잃어버린 절망만이 그들을 기다릴 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의 관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절망과
어두움만이 있올 뿐, 희망과 빛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 어려움의 시기에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억압과 속빅에서 해방시켜주셨던
그 주님을 우리가 배신하고, 배반하여 지금의 이러한 가혹한 시련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올 버렸기 때문에 지금의 이 어려움을, 고통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 반성과 속죄 뉘우침은 그들에게 더 이상 어둠과 절망에
빠지게 만들지 않습니다. 어둠과 절망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희망의 빛을 노래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희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구원자, 우리를 해방시킬 해방자를 희망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절망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였으며 그 반성을 통해서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임마누엘!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절망에서 희망을
품었던 그 대성이 임마누엘입니다. 성전의 파괴와 유배 생활 하느님께서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그 절망의 시간 속에서 피워낸 희망이 바로 임마누엘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그 처참한 상황에서 메시아라고 하는 구원자를 희망하고, 빛을 품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아픔을, 우리의 절망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을 때, 그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대림절이 다시금 우리를 다그쳐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절망의 시간 속에서 반성과 뉘우침을 통하여 하느님께 다시 다가가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2000년 전의 그들만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또한 어려움의 시간을 보내고 잎습니디.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도
절망과 어둠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희망의 빛으로 나가야 합니다. 대림절은 그것을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주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만나는 형제 자매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분을
주님으로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지 않다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어둠과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러한 은총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회개하며 참 메시아를 다시 우리 삶 속에서 만나는 대림절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