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축일
세상에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습니다. 성서에 보면 은총과 축복을 누구보다 많이 받은 사람들, 예언자들, 사도들, 예수님,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의 생애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따라다닙니다. 성서의 위대한 인물들은 대개가 그 인생길이 고난의 삶이였습니다.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불행을 자기의 죄나 부모의 죄가 아니고,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실로암 탑이 무너져 죽은 자들의 불행을 보고 예수님은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함이라 하십니다.
도대체 왜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들이 이처럼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합니까. 모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하느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오늘의 시대에도 특별한 소명을 받은 예언자들은 그 길이 험난한 길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실, 산다고 다 똑같은 무게를 지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정말로 한 순간을 살더라도 내가 지금 살아있음을 느끼며 살 때만이 비로소 치열하다라는 평가를 받는 법이고, 그리고 흔히 그 치열함은 얼마나 절박하게 사는가에 따라 결정되어 집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이 땅의 첫 번째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생각하면, 절박함과 간절함 그리고 치열함의 충만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됩니다. 그리고 특별히 선택받는 자의 삶이 어떠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열여섯에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엄동설한의 땅을 거쳐 이역만리에서 마카오 유학생활 꼬박 8년, 그러나 그토록 바랐던 사제 생활은 겨우 고작 10개월,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고도 겨우 스물다섯에 죽어야 했으니 그가 목숨을 내던져 조선의 사제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었는지를 생각한다면, 또 한 번, 절박하고도 간절하게 산다는 일의 충만함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아버지는 일찍이 순교를 하고, 아들 신부 만든 죄로 어머니는 거지가 되어야 했던 이 처절한 아픔이 전해주는 바는 분명합니다.
인간의 눈으로야 안타깝고 억울하기 그지없지만, 그런 그가 죽음을 목전에 둔 옥중에서 조선의 교우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불사르는 희망의 무게를 우리는 그의 옥중편지에서 다시 듣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옥중에서 스무 통이 넘는 편지글을 남기셨습니다. 그 중, 마지막 주교님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입니다.
“그들은 저를 잡아 가지고 상륙한 뒤에, 옷을 벗기고 다시 마구 때리며 온갖 능욕을 가하다가 관가로 압송했는데,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관장이 제게 묻기를, ”네가 천주교인이냐?“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요” 라고 대답하였더니, ”어찌하여 네가 임금의 명을 거역하여 그 교를 행하느냐? 배교하여라.” 하길래,
”나는 천주교가 참된 종교이므로 받듭니다. 천주교는 내게 천주 공경하기를 가르치고, 또 나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합니다. 내게 배교하라는 것은 쓸데없는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이런 대답을 하였다고 주리를 틀고서, 관장이 또 말하기를, ”네가 배교하지 않으면 때려죽이겠다.”하기에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결코 나는 우리 천주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그 후에 여덟 자나 되는 긴 칼을 가져오기에, 제가 즉시 그 칼을 잡아 제 손으로 제 목에 대니, 둘러섰던 모든 사람이 또한 다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미 배교한 두 사람과 함께 옥에 가두는데, 저의 손, 발, 목, 허리를 어떻게나 몹시 결박하였던지, 걸을 수도 없고 앉을 수도 없고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저희 사랑하올 부친이요 공경하올 주교님께 마지막 하직의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베시 주교님과 안 신부님께도 공손히 하직을 고하옵니다. 이후 천당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옥에 갇힌 탁덕 김 안드레아. 1846년 8월 26일,
이 서한을 남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같은 해, 9월 15일 군문효수(목을 잘라 걸어놓는 사형방법)의 형을 받고 그 다음날,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우리도 그의 생애처럼, 절박함, 치열함, 간절함의 삶을 살아갈 믿음, 희망, 사랑을 간구하며 민족 복음화의 염원을 안고 오늘 축일을 뜻있게 지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