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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20150215_연중제6주일 - 문창우 비오 신부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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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16 00:11:53
  • 조회 수: 3725

씨튼 수녀원 미사(연중 6주일 2015. 2. 15)

 

언젠가 어린이 미사 때 요즈음 가장 무서운 병이 어떤 병이에요?"하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어린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암이요."하고 대답하더군요. 또 더러는 에이즈요."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암이나 에이즈 모두 무서운 병입니다. 그럼 예수님 시대에 가작 무서운 병은 어떤 병이었을까요? 나병곧 문둥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는 나병환자들이 없을까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나병환자들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많은 종교단체나 국가에서 따로 관리와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려되는 것은 사람들이 우리 시대에는 자칫 나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아프거나 죽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 선조들은 누가 죽었다면 금방 알았습니다. 상여가 동네 한 가운데를 지나가고보통 마을 뒷동산에 묘를 썼으며 고인은 대부분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위독해지면 곧 바로 병원으로 격리시킵니다. 이렇게 격리되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무서운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잘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시대에는 무서운 병이 없어지고 건강과 깨끗함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러나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병으로 고통 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시대에도 건강했던 사람이 어느 날 나병에 걸렸다 하면 그 순간부터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내용처럼 성 밖으로 쫓겨나서 아주 비참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성 안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성 밖은 적이나 격리되어야 할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혹시라도 그렇게 격리를 했는데도 잘못되어서 건강한 일반 사람들이 그들과 접근이라도 하게 되면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쳐야 했습니다.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레위 1345)

 

사람들의 눈에 띄면 돌에 맞아서 죽게 되고또 미리 소리치지 않으면 그에 못지않은 형벌이 그들에게 가해졌습니다. 이렇게 나병환자는 그의 부모와 가족은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사는 외롭고 불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 하나가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르 140)

 

이 나병환자는 이곳으로 와서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아주 험하고 힘든 과정을 겪었을 것입니다. 사람들한테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그가 그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온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결코 그런 용기는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목숨을 내건 용감한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상황을 한 눈에 알아보셨는지 놀랍게도 손을 뻗어 나병환자에게 갖다 대시며 한순간에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병을 고쳐 주실 뿐만 아니라 사회로 복귀시켜 주셨습니다. 그 당시 공증기관은 사제였습니다. 이 사람의 병이 다 나았다고 사제가 선언해 주어야지 성 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와 살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과연 이 사건은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께만 가능한 일인지를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며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 생전의 기적들을 재현했는데우리 시대에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나병을 치유 받은 사람들이 온전한 사회생활을 하는 놀라운 기적이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미안 신부님은 1804년 벨기에에서 태어났습니다. 신부님이 사제로 수품을 받을 당시 하와이 모로카이 섬에는 700여명의 나환자들이 쫓겨 들어갔습니다. 나병환자들만 갇혀 살고 있는 그곳에 33살 나이 의 한 건강한 남자가 들어갔으니 그가 바로 다미안 신부님이셨습니다. 다미안 신부님은 집을 지어주고 손수 환자의 고름을 짜주면서 희망을 잃어버린 그들을 돌보아주고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일생을 그렇게 살다가 마침내 나병에 감염이 된 다미안 신부님은 그곳을 떠나서 요양치료를 받으라는 의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계속 환자들을 돌보다가 1889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1893년 모로카이 섬에는 다미안의 집이라는 기념관이 생겼는데 그 앞에 이런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치유 못지않은 놀라운 기적을 일구어낸 분이 바로 이 다미안 신부님이고 복자품에 오르면서 이 신부님의 전기가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저도 대학생 때 처음으로 나환자들이 있는 소록도에 가서 일주일 정도 함께 체험하며 지낸 경험이 있습니다. 정말 그곳에 사는 분들과 함께 지내면서 느낀 것은 그 환자분들이 결코 저주받은 인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건강한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환자분들이 참으로 안정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새벽미사시간이 다가오면 해가 제대로 뜨지 않는 시각에도 마을에 사는 신자들이 하나 둘 성당 불빛을 보고 미사참례를 위해 모여듭니다. 그때 저는 제 두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자신도 다리가 한 쪽이 절단되어 불편한데 이 분은 나병의 후유증으로 눈을 잃은 분을 인도하여 함께 성당으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가 눈과 발이 되어주는 모습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시각에 모여서 기도를 하는데 손가락이 떨어져나가고그냥 손 뭉치에 묵주를 걸고 역시 묵주알을 굴리며 기도하는 장면은 정말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광경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는지 아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기적입니다. 세상에 이분들 이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어디 흔하겠습니까? 그들의 기도는 언제나 감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사치스럽습니까? 주변에서 보면항상 남과 비교하고 부모형제자녀들의 문제로 고민을 합니다. 왜 나에게 능력 있는 부모자식이 없는가? 왜 우리 집은 남들처럼 호사스런 차도, 집도 없는가? 심지어 외모가 맘에 안 들어 죽고 싶다고까지 불평들 합니다. 안타까운 모습들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면 그렇습니다. 작은 부분에서도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만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알게 되면 몸이 불편하거나 가난해도 감사하면서 살게 됩니다. 기적입니다. 주님의 손길을 체험하면서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치유의 손길이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도구로써 일생을 바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기적이 지금도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번은 그런 나병환자들이 사는 곳 중 하나인 안양 라자로 마을에 일본 사람들이 직접 와서 도움을 주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일본인 의사는 일 년에 한 번씩 한 달 정도를 휴가를 내서 라자로 마을을 찾는 다는 것입니다. 그가 와서 하는 일은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얼굴이 때로 성한 곳이 없습니다. 살점이 문드러져서 제대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 모습들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그래도 조금 고치면 나아질 것 같아 하느님이 주신 의술로 가장 힘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일본인 의사는 하느님이 주신 의사였구나.’하며 그분이 참으로 거룩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세상의 의사들은 돈을 많이 벌기에만 급급합니다. 그런 의사들의 모습에 식상해있는 우리에게 일본인 의사의 선행의 이야기는 존경하는 마음까지 가지게 했습니다. 나병환자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보기 좋게 고쳐주기 위해 땀 흘렸던 그 의사의 손길에서 예수님의 치유의 손길을 떠올려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은총이 지금도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곳곳에서 나타나 보여 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세상이 지탱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그 마음을 나눌 때 바로 그곳에 주님께서 현존하시고 주님의 놀라운 은총이 열매 맺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안에 형제자매여러분!

 

이제 우리들의 차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사제요 수도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철저히 닮고 싶은 우리들입니다. 오늘의 나병은 육체적인 모습만이 아니라 영혼의 나병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살아가면서 지난날생동감 있는 변화보다 안주하며 살아가는 시간에서 점점 영혼의 나병을 앓아 왔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하느님께 청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줍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1코린 1031)

 

사실살다보면 세상은 자기중심적인 세상이 되기 쉽습니다. 내게 기쁜 일이면 모두에게 기쁜 일일 것이라 생각하고내게 힘들고 고통스런 일들이 닥치면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 때문에 모두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야 맞는다는 생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혹 나의 기쁨을 함께 나눠주지 않는 사람에게 분노하거나나의 슬픔에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미움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충분히 하느님의 사람이 되지 못한 증거입니다.

 

진정 우리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유익보다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애쓰고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던 바오로의 삶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치유 받은 나병환자처럼 주님의 도움으로 다시 한 번 깨끗해지길 원합니다. 다시 한 번 보란 듯이 새 삶을 시작하길 바랍니다. 있는 힘을 다해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온 세상에 외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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