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2,1-5; 로마 13,11-14ㄱ; 마태 24,37-44)
☧. 찬미예수님
오늘 미사를 통해서, 우리는 전례력으로 새해의 시작에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은 작은 후회와 아쉬움이 자리합니다. 반면에 한 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한편으로는 걱정과 두려움도 자리하지만, 새로운 시작에 서 있다는 마음으로 설레기도 합니다. 문화적으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덕담을 주고 받습니다. 복 많이 받고, 복 많이 짓고 살라며, 서로를 격려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어떠한 면에서는 희망의 격려로 들리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매 순간순간 반드시 다가올 그날이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그날을 맞이할 준비를 잘 하지 않는다면 안된다는 엄포로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때, 곧 주님을 마주하는 그 순간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번 출발한 이 항해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여정 안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웃고, 아파하기도 하고, 여정 중에 풍랑을 마주하고, 길을 잃기도 하고, 어두운 망망대해에 놓여있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아름다운 빛살 아래 피어오르는 윤슬과 지평선 위로 뜨고 지는 해가 그려내는 장관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생의 항해 목적지는 주님을 뵙는 그날, 그때입니다. 한 동료 신부님과 대화를 했을 때, 그 신부님이 “나는 목적지가 없이, 드라이브를 하거나 산책하는 걸 잘못해, 분명한 목적를 설정하고 거기를 찍고 돌아오는 건 할 수 있지만” 라고 말했습니다. 강론을 준비하면서, 그때의 그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그때를 향해 살아가고 있는데, 도착 예정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그 장소까지 몇 킬로 남았는지 알 수 있다면, 시간에 맞춰 속도를 내거나, 잠시 쉬어가거나, 기름도 보충하고, 여유롭게 주변을 더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교내 어린이 발명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직접 만들지는 못했지만, 신호등에 초시계를 설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신호등 초시계를 발표했습니다. 사람들과 자동차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게 된다면, 미리 멈추거나, 적절하게 속도를 줄일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더 속도를 내고, 사람들이 더 빨리 건너려고 뛰지 않을까? 그래서 더 위험하게 될테니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 언제부터인가? 큰길의 신호등에는 대부분 초시계가 달려있고, 최근에는 네비게이션에도 몇 분 후에 신호가 바뀌는지를 표시하는 기능이 추가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선생님을 원망하기 위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쯤 도착할 수 있을지를 알고 싶어합니다.
이처럼 주님을 마주하는 그때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미 주님께서는 그날의 표징이 일어나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 표징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설령 알아보았다고 하더라도 잠들어 있고, 어둠에서 헤어 나오려 하지 않고, 깨어 준비하기를 게을리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나 곧 간다!’는 말만하실 뿐, ‘언제 도착해’라고 하지는 않으십니다.
기다림의 상황과 기다림의 마음은 ‘누가 오느냐? 무엇을 기다리느냐?’에 따라 다른 듯합니다. 예컨대 간식을 사오시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마음과 아직 할 것을 다하지 못했는데 돌아와서 검사 하실 부모님을 기다리는 마음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배달 음식과 주문한 옷이 언제 도착할까 하는 마음에 도착을 기다리는 마음은 설레지만, 그 이후에 카드값을 결재해야 하는 날이 점점 다가오는 순간은 빨리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비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탄생을 기다립니다. 구원자, 영원한 생명의 보증인이자 동시에 심판자이신 그분을 마주할 순간을 기다립니다. 종말의 때, 곧 그분 재림의 순간은 알지 못하지만, 그분의 탄생이 4주 남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마주하기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하시겠습니까? 그분을 마주 뵈올 날이 점점 다가오는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우리 마음과 우리 공동체 안에 머무르실 수 있도록 그분의 자리를 마련하는 대림시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안하고 안락하게, 우리의 눈치를 살피시지 아니하시고, 우리로부터 소외되지 않으시도록 그분의 자리를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그 자리에 머무르시면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새로운 한 해 동안,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