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아기의 탄생으로 온 세상을 기쁨으로 채워가는 이 시간, 우리의 삶과 세상도 기쁨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방금 우리가 들은 요한복음의 시작 1장 1절에서 14절은 한 아기 탄생의 신비를 노래한 로고스 찬가입니다.
장 바니에는 이 찬가를 범상치 않은 시라고 하면서, 요한복음의 시작을 인간 본성의 치유에 대한 신비스러운 장면이라 지칭하면서, 이 서시는 요한복음 전체를 요약하는 구절로, 어떤 의미에서 구원의 역사를 응축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서언, 서시라고도 합니다.
장 바니에는 이 서시를 대하면서 “이 세상에서 고통이 진정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내 안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과 나약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내 가슴을 따뜻하고 뭉클하게 내 지성을 열개했던, 내 인생에 희망과 의미와 방향을 제공했던 노래”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서 학자들이 이 서시를 로고스 찬가라고 합니다.
이 서언은 희랍어 로고스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로고스를 말씀으로 번역하지만, 이 단어는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로 우리가 내뱉은 말은 물론이고, 그 말 뒤에 있는 사상, 영감을 준 통찰과 지혜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희랍인들은 우주에서 합리적 도덕 질서가 있다고 믿고, 그 자연질서를 로고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희랍인들에게 삶의 의미는 곧 세상 질서에 순응하여 잘 사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서의 저자 요한은 헬레니즘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로고스라는 개념을 예수께 적용하여 그분의 신원과 정체를 당시 이방인 세계에 실재적이며 역사적 사실, 특히 한 인격체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요한은 로고스 곧 말씀은 세상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이시고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분으로 창조에 참여하여 생명을 주신 분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이였다” 고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만물이 말씀이신 빛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빛과 지혜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 빛이신 하느님을 받아들인 자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 즉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말씀의 육화, 강생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고 이것이 인류 역사의 시작과 끝이기도 합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천상 영광과 권한을 포기하고 우리처럼 상처받고 나약하고 가난한 인간이 되어 오늘 여기 구유에 머무십니다. 이 복음서의 저자인 요한은 다음과 같이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복음 1장 14절)
그러므로 이 가난의 신비는 강생의 신비를 설명하는 다른 표현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이 천대받은 세상을 깨버리기 위해서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을 무력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하느님이 꿈꾸셨던 새로운 세상을 이제 시작하려고 하느님이 인류 역사 안에 직접 오신 날이 성탄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류에게 들려주는 기쁜 소식입니다.
어둠 속을 비추는 빛이 올 것이다. 외치던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세상은 참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 탄생은 바로 우리 자신의 새로운 탄생인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새로운 세상으로 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탄생은 우리 자신의 새로운 탄생입니다. 실로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 때문에 이 세상은 온통 새로워졌습니다. 이것이 성탄이 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성탄이 주는 기쁨을 마음에 품고 구유 앞에 머리 숙여 경배드립시다. 인간 생명의 정수는 잘남이 아니라 못남에 있고, 높음이 아니라 낮음에 있으며, 유능이 아니라 무능에 있음을 이 구유는 우리에게 다시금 웅변합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웅변하고, 구유의 모습으로 웅변하며, 이 보잘것없는 희망이 결국 이기고 말 것이라며, 우리 시선을 한 아기로부터 다시 시작하게 합니다. 오늘 허리 숙이고 경배하며 한 아기를 품에 안읍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아이는 낮은 모습으로 자랄 것입니다. 이 아이는 승리하는 법을 익히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에 잘 지고 잘 죽고 잘 비우는 법을 익힐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아이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것임을 보여 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아이를 가슴속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아이는 우리에게 희망을 제안할 것이고 믿음을 북돋을 것이며 절대로 어떤 순간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며 우리의 눈을 바라볼 것입니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방식이 하느님으로부터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 우리 인생 안에 새롭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탄이 우리에게 주는 참 기쁨입니다.
하느님 앞에 스스로 작음을 고백하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 친히 오늘 한 아기의 생명을 통한 당신의 방식을 새롭게 선물하십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벅차오르는 새로운 탄생의 출발이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 여러분 모두에게 빛과 희망과 구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