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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연중 제25주일(2024년 9월 22일) - 김경민 판그라시오 신부님(제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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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23 18:28:56
  • 조회 수: 2362

마르 9,30-37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사회와 문화에는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나름의 평가 지표가 있다. 부와 명예, 권력은 이 세상에서 거둔 성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에게 성공이란 어떤 모습일까?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산다는 그리스도인의 평가 지표는 무엇인가? 영국의 시인이자 예수회 사제였던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를 실패를 통해 성공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실패를 통해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치신다. 오늘 복음 본문이 속한 마르코 복음 9장의 시작 부분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앞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이야기가 나온다. 그 후 제자들은 예수님이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장면을 목격한다. 많은 기적을 행한 덕분에 예수님의 명성은 높아졌고 온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분을 찾아온다. 제자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성공했고, 모든 것을 다 갖추신 분이다. 영광스러운 변모가 보여주듯 장래마저 촉망된다.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네들 중에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토론하면서 그분의 성공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목에 사레 들듯이 당혹감이라는 기침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왜 예수님은 자신을 죽음에 넘겨서 당신의 성공은 물론 제자들의 성공까지 위험에 빠뜨리실까? 다른 경우처럼, 이번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이 참된 진리에 눈을 뜨기를 바라셨다.

 

오늘 제1독서의 악인들도 세속적인 성공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의 물질주의적 세계관에 따르면 현세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존재의 종말을 알리는 죽음은 궁극의 실패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희생해서라도 삶을 즐겨야 한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의인의 생활 방식은 자신들이 향유하는 쾌락주의적 생활 방식에 대한 모욕이므로 제거해야 한다. 악인들이 보기에 의인이 자신들의 손에 불시에 죽는다면 하느님이 그를 도와주지 않는 것이기에 의인의 완전한 실패를 증명할 뿐이다. 악인들은 의로운 사람을 수치스러운 죽음으로 처단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성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악인들은 하느님께서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도 일하신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다. 하느님 앞에서는 도리어 그들이 어리석다고 심판받는다. 세상이 실패라고 여기는 것을 하느님은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신다는 신비를 그들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했다고 단언한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 예고는 제자들에게 진정한 성공은 십자가의 모습으로 온다는 진리를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명예, 명성, , 세상 권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십자가의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함으로써 죄와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를 이루셨다.

 

그리스도인에게 성공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당신 생명을 사랑의 희생으로 바치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원수를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고,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 없이 자선을 실천하고, 매일 기도할 시간을 따로 마련하고, 청빈하게 살려는 우리의 노력은 세상에서는 실패나 어리석음 또는 수치스러운 죽음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들이다. 정결, 순명, 단순히 인내와 신뢰로 매일의 시련과 투쟁을 견디는 것 - 이 모든 것이 하느님 눈에는 성공이고 승리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우리를 참된 생명과 풍성한 은총의 자리, 곧 십자가 아래로 데려다주기 때문이다.

 

예수님처럼 그리스도인은 실패를 통해 성공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다. 오늘 하느님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과 실패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이해를 재고하도록 도전한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면서 얼마든지 십자가 아닌 다른 기준에 기대어 일할 수 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참여하는 전례에 고요히 참여하면서도 나를 십자가 아래로 이끄는 상황은 본능적으로 피해버릴 수 있다.

 

그러니 지극히 거룩한 이 성찬례에 참여하는 우리가 이 성사로 힘을 얻어, 우리 삶에서 예수님의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을 주시길 청하자. 우리가 예수님의 승리에 동참하려면 반드시 그분의 고난에도 동참해야 한다는 사실을 밤하늘을 가르는 선명한 번개처럼 일깨워 주시길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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