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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주님 성탄 대축일 낯 미사(2023년 12월 25일) - 이영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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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6 03:40:35
  • 조회 수: 513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오늘 성탄대축일 아침에 요한복음사가는 세상을 향해서 중대한 결단의 순간이 왔다고 선포합니다. 그분이 자기 땅에 오셨지만 알아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참 빛으로 오셨지만 어둠 속에 있는 이들은 빛보다 어둠을 사랑했기 때문에 빛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쪽입니다. 요한복음사가의 공동체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우리와 함께하시고자 낮은 자의 모습으로, 스스로 비천하게 되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 크신 하느님의 영광과 사랑을 보았다고 합니다. 아무도 요한복음이 말하는 이 결단을 피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탄생,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이 사건은 과거에 일어나고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사가가 외친 놀라운 말씀이 우리 가운데 크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는 참 영광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빛이 무엇입니까?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눈이 아니라 눈이 사물을 보게 만드는 것이 빛입니다. 이 빛이 하느님을 보게 하고 내가 누구인가를 보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인격의 존엄성과 권리를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이 땅에 오신 성탄은 인간의 새로운 탄생의 날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경시당하고, 권리가 유린당하는 이 시대에 성탄은 인간의 가치가 드러나고 우리 인류의 희망이 채워지는 날입니다. 하늘에는 하느님께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참으로 겸손하고 착한 사람들이 대접받는 인간 존엄과 인권을 되찾은 날입니다. 이것이 성탄이 주는 기쁜 소식입니다. 인간이 더 이상 동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날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기원 전과 기원 후로 갈라졌습니다. 역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성탄은 하늘에는 영광이 되고 땅에는 착한 사람들에게 평화가 된 것입니다. 인간은 실로 예수님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탄이 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가난한 삶들과 슬픔과 고통 중에 있는 이들 안에 드러난 구원과 해방의 신비였습니다. 베들레햄의 작은 말구유에서 터져 나온 생명의 빛은 눈먼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지혜였고 세상을 밝히는 빛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쁜 성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알아보고 그분이 우리 안에 탄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류가 너무 늦기 전에 그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아기 예수의 말구유에서 배워야 합니다.

그는 스스로 모든 이를 위하여 가장 무력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누구도 당신의 모습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가장 작은 이, 가장 서러운 이, 가장 볼품없고 가장 내세울 것 없는 이의 모습을 기꺼이 드러내셨습니다. 구유의 신비입니다.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이 놀라운 하느님의 방식을 우리는 그냥 신비라고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중병의 해법이 바로 구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로부터 겸손과 가난, 비움과 포기를 배우지 않으면 세상은 이제 희망이 없습니다. 늦기 전에 우리가 말구유 앞에 더 낮은 곳으로 마음을 비우고 내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작아져야 하고 더 약해져야 합니다.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이 세상을 향하여 우리는 말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이기는 길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유와 십자가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이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사건은 예수님의 탄생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 탄생 이후로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시작은 구유에서 마침은 십자가로십자가상 죽음은 예수님의 전 생애를 종합하는 사건입니다. 구유 곁에 십자가가 놓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높은 곳으로 가려고 안달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낮은 곳으로 오십니다. 그곳이 그분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 특히 낮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성탄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품어주신다는 희망, 아무도 제외하지 않는다는 희망입니다. 육화는 우리가 인간적인 방식으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며, 그분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유를 통해 하느님 사랑의 방식을 보게 하십니다. 지금 우리 안에 놓인 이 아기는 강하게 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무력하게 더없이 낮은 모습으로 자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아기는 승리하는 법을 익히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에 잘 지고 죽고 떠나는 법을 익힐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아기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 사랑이 어떤 것임을 유일하게 보여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아기를 가슴속에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지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겠지만 그때마다 이 아기는 우리에게 속삭일 것입니다. “나도 그랬다라고 그러니 괜찮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라.”라고 이 아기는 우리에게 희망을 제안할 것이고 믿음을 북돋울 것이며 절대로 어떤 순간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며 우리의 눈을 바라볼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성탄절 아기를 여러분에게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이 주는 희망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희망을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잘나고 높은 방식이 아니라 이기고 성공하고 다른 사람을 내리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낮고, 작고, 연약하지만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세상을 이기시는 새로운 질서를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라쉬 공동체를 창설한 장 바니 요한복음 묵상서를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들려준 말씀 가운데 한 구절을 소개하면서 오늘 성탄의 기쁨을 더 하고자 합니다.

내가 이 책에서 나누고 싶은 것은 요한복음의 말씀과 흐름 뒤에서 내가 들었던 음악이다. 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고통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내 안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과 나약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내 가슴을 따뜻하고 뭉클하게 했던 내 지성을 열게 했던 내 인생의 희망과 의미와 방향을 제공했던 노래에 귀 기울였다.

나도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 설령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아 잘들리지 않을지라도 슬픔과 절망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다줄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우리가 함께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노래하도록...”

하느님 앞에 스스로 작음을 고백하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께서 친히 이날, 한 아기의 생명을 통한 당신의 방식, 한없는 사랑의 신비를 새롭게 선물하십니다. 그 선물을 받읍시다. 그리하여 여러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벅차오르는 새로운 탄생의 출발하기를 소원하겠습니다. 성탄의 기쁨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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