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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삼위일체축일(2023년 6월 4일) - 이영수 신부님
  • 홈지기
  • 2023.06.04 23:52:36
  • 조회 수: 442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이 인간 구원 역사 안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신비를 고백하며, 찬양하는 주일입니다. 위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 안에 계시는 참 하느님을 특별히 공경 드리는 날입니다.

 

주 하느님 크시도다.” 가톨릭 성가 2번을 부를 때마다 하느님의 오묘 하심을 생각하며, 가슴 뭉클함을 느낍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물론, 위로 우주를 보면 그 웅대 함과 오묘함을 절로 감탄하게 합니다. 그리고 강생의 신비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영원한 삶을 희망하며 주님의 크심 앞에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 노래 부르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사람이 되시고 어떻게 죽음에서 부활로 파스카 하셨는지 또한 성령이 어떻게 우리와 교회 안에 역사하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머리와 지혜를 통하여 그분의 신비를 파헤쳐 보려고 하였습니다.

 

3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이단에 대항하기 위하여 신학자들은 하느님의 신비를 삼위일체로 설명하려 하였습니다. 인간에게 인격이 있다면 하느님께는 위격이 있습니다. 그 위격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세 위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면서도 체는 오직 하나입니다. 몸이 하나이기 때문에 절대로 세분이 아닙니다. 세 위격을 가지셨으면서 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 개념이나 지식으로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마치 가정에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으며, 자녀들이 있지만 그러나 그 가정은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 소리도 멜로디와 박자와 강약이 합치면 하나의 음악이 됩니다. 국가도 입법, 사법, 행정이 합하여 완전한 하나의 민주 국가 됩니다. 군대도 육군 해군 공군이 합해서 하나의 군대가 됩니다. 생명의 기원도 물, 공기, 태양의 열이 있어 생명을 이룹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삼위일체를 한 인간의 기능, 즉 지성, 감정, 의지로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 셋이 하나라는 이 삼위일체는 결국 하느님의 신비이며, 특히 사랑의 신비이고 가족의 신비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느님의 공동체의 식구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공동체의 하느님을 믿고 닮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신을 믿느냐 하는 것은 그 신을 믿는 신앙 공동체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 공동체의 모습은 그들이 믿는 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고 있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그 사랑을 보여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가정은 물론, 우리의 수도 공동체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신앙 공동체 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삼위 하느님은 한 마디로 사랑이면서 무한하며 영원합니다. 그 이름 안에 우리 존재의 신비가 있고, 이 믿음 안에 우리의 생명과 우리 인생의 목적이 있습니다.

 

성삼위의 하느님은 우리의 찬미와 흠숭이 필요치 않으나 우리의 흠숭과 찬미는 그분께 영광이 되고, 우리의 구원과 행복의 근원이 됩니다. 인간의 참 행복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성삼위를 흠숭 하는 신앙 안에 있습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6월 성심성월에는 오묘하신 하느님의 놀라우신 사랑의 신비 앞에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찬양하는 시편 103편을 읊어보십시오. 시편은 하느님 없이는 채워 질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라고 하지요.

 

히브리 시편의 본시 이름은 찬양가의 책으로 되어있습니다. 물론 시편에는 탄원 시편의 수가 더 많기는 합니다. 시편 집은 가난한이들이 서러움을 대변하는 절규와 탄원에서 찬미로 건너가는 전반적인 기도의 여정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주님께 피신하는 가난한 이들이 기도이기에 탄원으로 시작해 찬미로 이르는 시편이 주를 이룹니다.

 

시편 103편과 104편은 완벽하게 한 쌍을 이루면서 찬양하라고 시작과 끝을 장식합니다. 103편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104편은 창조에 나타난 하느님의 광대 하심을 노래합니다. 103편은 그분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열거하고 104편은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여 주면서 한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말을 주체할 수 없이 구원받은 이들이 하느님을 찬양하고자 초대합니다.

 

시편 103편의 첫 두절에서 하느님의 용서와 자유, 자비를 체험한 구원받은 개인이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칭송하라고 외칩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하느님의 권능을 비교하면서 인간이 바람에 맞서 아주 잠시 서 있다가 금세 사라져 버릴 만큼 나약한 우리를 구해주는 것은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자애로 인간을 보살펴 주시고 허물을 없애 주시는 분임을 노래합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시편 저자의 찬가는 자식을 돌보는 아버지의 표상에서 결정을 이룹니다. 우리의 잘못을 심판하지 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사랑은 하늘만큼 높고 그분의 용서는 우리의 죄를 치워 버리신다고 소리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개인의 외침에서 이제는 모든 피조물, 하느님의 모든 작품인 자연과 천상 군대까지 소환하여 주님을 찬미하여라 고 외칩니다. 바로 이 시편에서 다음 세대에 까지 미치는 하느님의 한결 같은 사랑에 대한 확신은 결국 예수님의 성심이 보여주신 자비와 사랑을 여기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 성심 상월을 보내면서 우리는 시편 103편을 읊으면서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며 마음을 모아 시편 작가와 함께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찬송을 드립시다. “하느님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안의 온갖 것도, 그 이름 찬양하라. 당신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말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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