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회동 노동자 추모미사 강론
2023.5.19
지난 5월 1일 노동절에 스스로 목숨을 거둔 양회동 노동자는 생의 대부분을 철근노동자로 살았다. 콘크리트 압축을 견디며 잡아끌어 엄청난 무게를 견디는 철근을 닮은, 건실하고 정직하게 동료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던 시민이자 노동자였다. 그를 무너뜨린 것은 정부의 노동자 혐오와 탄압이었다. 그에게 쓰여진 혐의는 ‘폭력행위 등 처벌법에 의한 공동공갈’이라는 그야말로 공갈 같은 혐의였다. 대통령의 한심하고도 편파적인 경제관, 노동을 열등하게 바라보는 인간관, 거기에 부응해 시민의 복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에 아첨하는 검찰과 경찰의 권력남용이야말로 문제일 것이다.
유서에는 “억울하고 창피하다”고 써있었다. 그가 받았을 모멸감과 절망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무겁다. 양회동 노동자가 한 일은 아내와 두 자녀를 위해 열심히 기쁘게 일하고, 불법재하도급과 중간착취가 만연한 건설업 현장에 동료들의 일자리를 마련하고, 하청업체와 싸우면서 동료 노동자들의 권리옹호를 위해 헌신했다. 경제와 노동은 인간 위해 인간이 하는 활동이다. 그는 그 길을 올바르게 갔을 뿐이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온전한 삶이란 사실 단순하다. 누구나 부족함 없이 유년기를 보내고 청년기에는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킬 기회를 찾고 일할 시기에는 노동의 충분한 권리를 누리며 나이 들어서는 존엄한 은퇴생활을 하는 것이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들어온 모든 존재가 잘 조화된 온전한 상태로 사는 것이다. 샬롬이란 말에는 무사히 귀환한다는 뜻도 들어 있다. 우리도 안전하게 머물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는 노동은 각별한 뜻을 지닌다. 일이 좋은 일이 되려면, 노동자가 일을 통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실현해야 하며, 일이 공동선에 도움을 주어야 하며, 노동자는 인간존엄의 원칙에 따라 대우받아야 한다. 존엄은 빈 말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말이다.
도둑이 길에 서있는 자전거를 훔쳤다.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잘못인 행위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인간존엄에 위반 된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자전거의 주인이 장애인이어서 특별히 제작된 자전거에 의존하지 않고는 어디로 이동하기가 불가능한 경우라고 해보자. 이때는 인간 존엄의 위반이다. 이 사람은 자신의 인간적 자율성의 중요한 요소인 독립적인 이동수단을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를 범죄화하며 법으로 협박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노동자의 자율성, 선택과 결정이 배제되는 노동은 인간존엄의 위반이다. 노조를 억압하고 탄압하는 것은 법위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존엄에 대한 공격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통령이 그래야 쓰겠나?
우리는 대통령이 나서 노사협의와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노조활동을 건폭이라 낙인찍고 혐오와 배제를 통해 노동자를 죽이는 행동을 하고 있는 기괴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 풍요의 시대에 노동자는 산재로 죽고 분신하며 죽어가는데, 자본과 권력은 마비되어 있다.
왜 그렇겠는가? 이들은 노동자, 희생자, 취약한 이들을 절대 존중하지 않는다. 인간 모두가 동등한 존재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는데도 말이다. 이것이 천부적인 것이든 성스로운 것이든, 그렇다. 이들은 원래 사람을 열등하게 보고 대상화하고 도구처럼 여기고 비인간화 하며 모욕하는 데 능숙하다. 우리는 권력의 남용에 고통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존엄에 상처를 주는 이들과 마주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현재의 경제체제가 만들어 낸 극심한 불평등, 노동착취, 전쟁과 갈등, 민주주의의 약화, 공포의 문화 같은 현상을 ‘인간성의 부도사태’라고 말한다. 탐욕스러운 자본가들, 자기이익에만 몰두하는 국민힘, 이들에 기생해 혐오와 차별로 돈벌기 급급한 사이비 언론, 모두가 이 사태의 주역이다. 신성모독을 범하고 인간존엄에 반대하는 혼종의 괴물들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야 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고 서로 존중하며 격려하고 어려운 일은 나누며 살아야 한다. 품위 있고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이 사회를 변화시켜야만 한다. 이런 악마적인 체제를 용인하며 숨죽여 살거나 무관하게 사는 것이 바로 인간존엄이 위배이며 사랑의 배반이다.
가톨릭 공동체는 특별히 공동선에 함께 하는 선의의 사람들과 연대해 이 어려움을 마주해야 하겠다. 연대는 단순히 남을 돕고 좋은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일이다. 연대는 정의의 문제이며 동시에 신앙의 문제이다.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잔혹함에 아파하며, 이를 만들어내는 제도와 체제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노동을 열등하게 보고 노동자를 아무 흔적도 없는 사람 취급하는 이들에게, 노동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가장 소중한 활동이며 노동자야말로 가장 자랑스러운 직업이라는 것을 외치는 것도 인간존엄에의 연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