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5일 성령강림대축일
온 누리를 비추던 부활시기의 기쁨이 절정을 이루는 50일째 되던 날, 약속하셨던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주셨습니다. 그것은 교회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으며, 예수님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표시였습니다. 이날은 기쁨과 소망과 사명의 축일로 영원히 기념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교회가 성령의 생명력을 통해 탄생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는 이 뜻깊은 날, 요한복음을 통해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잔잔히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여러 차례, 특히 당신의 마지막 밤, 최후 만찬석 상에서 참으로 비장한 마음으로 당신이 떠나실 시간을 기다리면서 긴 유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날 밤, 주님은 그들이 새로운 능력, 예수의 영을, 아버지가 보내실 협조자를 받게 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의 상황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그 순간부터 박해를 당할지 모르는 긴장이 가득 배어있는 초세기 교회공동체가 그 대상입니다. 세상은 아무도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 않는데, 이를 고백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장나버리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사건을 체험한 그들은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고 목숨을 내걸고서라도 복음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 자신들 역시도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올지 두렵고 또 모든 것을 박탈당할지도 모를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들이 뼈저리게 체험하는 바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두렵고 떨리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어둠 속에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그리고 그분께서는 기어이 우리에게 다시금 돌아오실 것이라는 굳은 약속,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숨어있던 그 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평화의 인사를 하시며 “성령을 받아라.” 하고 용서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십니다. 이 만남 속에서 예수님은 저마다 무서움과 혼란에 빠진 제자들을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로 바꾸어주십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처럼 되어야 하고, 그분의 사명을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성령으로 변화되어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듯, 그들도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기쁜소식이 놀랍게도 이 어두운 세상 안으로 힘차게 퍼져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령의 활동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배신과 나약함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평화의 인사를 건네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세상에 나아가 용서를 통해 실질적인 일치와 화합을 이루는 사명을 수행하도록 성령을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와 예수님이 거기 머무시면 평화는 저절로 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어도 주님이 거기 계시면 천국의 평화가 그곳에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고 일러주셨습니다. 교회는 세상이 주는 갖가지 거짓 평화의 유혹에 단호히 반대해 왔습니다. 평화에로의 초대는 내 안에서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이기심과 안락함이라는 유혹을 끊어버리고 내 스스로 길을 내며 걸어야 하는 치열한 자기 싸움의 길입니다. 마음의 평화 운운하며 현실의 기복 정도로 신앙을 하고 싶은 유혹과 풍요와 안락만이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믿고 싶은 유혹을 다시 한번 털어버리고, 그동안 내팽개쳤던 내 십자가를 다시금 지고 일어서는 길, 그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지금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그 확신만이 전부인 평화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그 평화를 누리기 위한 우리 신앙인들의 기준은 봉사에 대한 헌신, 사랑에 대한 투신, 믿음에 대한 끝없는 선택, 기도에 대한 배려는 우리가 차지해야할 평화를 위한 가치들입니다. 한마디로 평화는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희생과 시련과 고통을 치르고 얻어내는 결실이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이제 우리도 성령의 은혜를 간구하면서, 봉사와 헌신과 사랑을 위해 일어나 가십시다.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을 통해 우리도 성령으로 충만되어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현존하게 하고 복음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교회의 본질인 선교사명을 실천하기 위하여 세상으로 나아가 선교의 일꾼이 되십시다.
성령강림 대축일을 맞이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레지오 마리애의 선서문을 풀이한 “사도직 신학”을 저술한 쉬넨스 추기경님의 명언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성령이 없다면 하느님은 너무 먼 분이 되시고, 성령이 없다면 예수님은 과거의 지나간 인물에 불과하며, 성령이 없다면 복음은 죽은 문자에 불과합니다. 성령이 없다면 교회는 사회 복지 단체에 불과하며, 성령이 없다면 권위는 봉사가 아니라 권력에 불과하고, 성령이 없다면 전교는 선전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성령의 차원을 잃어버리면 교회는 생기 없는 화석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으로 평생동안 자주 읊어왔던 최민순 신부님의 “채송화의 노래”를 오늘은 교회 생일 축가로 생각하며 다시 읊어봅니다.
채송화의 노래(‘밤’ 시집에서, 최민순 신부 작)
뜰 모퉁이에 버려진 목숨 하나 채송화는
외로움을 지키는 풀이올시다.
바늘이 앉을만한 좁은 터에 살면서 채송화는
조용한 웃음을 지닌 꽃이랍니다.
겨자씨처럼 작은 알몸이 깁실같이 가냘픈 뿌리를 내리라고
님은 이 땅덩이(교회)를 지어 주셨답니다.
나의 봄과 여름을 마련하기 위하여
님은 따뜻이 편 손으로 지구를 받치고 돌려주십니다.(전례시기)
내가 숨 쉬라고 대기(7성사)가 있습니다.
마시라고 맑은 이슬(7성사)이 있습니다.
나는 비로 몸을 씻은 뒤에 고와집니다.
님의 노래 머금고, 봉우리 부풀어 오르면
태양은 눈부신 키스로 나를 꽃피웁니다.
바람은 간드러지게 춤을 추게 합니다.
나는 오래오래 살고 싶습니다. 끝없이 크고 싶습니다.
낮이면 파아란 하늘, 밤이면 별들을 바라보며,
하늘나라까지 키가 뻗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