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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예수부활 대축일 (2022년 4월 17일) - 이영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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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18 17:46:30
  • 조회 수: 1323

이 기쁜 날, 오늘 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발현기사가 세 번 나옵니다. 오늘 복음은 첫 번째 발현기사로 빈무덤 사건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오늘 복음 10절에 이어서 11절부터 18절까지가 첫 번째 발현기사입니다.

 

어두움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위험한 길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기에 혼자 무덤으로 찾아간 한 여인, 막달레나 마리아, 그곳에서 빈 무덤을 발견하고 황급히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알리려 찾아갑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을 찾아가 빈 무덤을 확인하고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자리에 남아 다시 꼼꼼히 확인하고 무덤 밖에서 눈물을 흘리고 기다립니다. 빈 무덤 밖에서 제자들이 떠난 자리에도 홀로 남아 눈물을 흘리고 있던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마리아를 부르십니다.

 

그 순간 마리아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기쁨과 감격과 즐거움으로 충만히 되어 라뿌니 스승님이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나는 내 아버지며 너희 아버지이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일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을 선포하라는 공식 사명을 주십니다. 그녀는 나아가서, “저는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이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고 예수님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합니다.

 

가만히 보면 예수님 주변에 여성이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남자 제자들이 다 떠나가고 도망간 자리에도 여자 제자들은 끝까지 의리를 지켰습니다. 남녀의 상종이 그야말로 유별했던 시절에 그분은 대단한 자유인으로서 구별 없이 사람을 대하신 결과였습니다. 동족도 아닌 이방 민족 사마리아 여자에게도 말을 건네시고, 그분에게 치유를 입은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사람 취급 못 받고 그야말로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치유를 입은 여성들은 비로소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해주신 벅찬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루카 복음서에 이렇게 나옵니다. “여자들은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돕고 있었다.” 여자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먹여 살린 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 아래에서도, 그리고 모두가 끝났다고 낙담하고 떠나버린 그 무덤가의 새벽에도, 이 여자는 끝까지 남았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누가 나의 주님을 데려갔다고 정처 없이 동산을 헤매고 다녔던 여자입니다. 그만큼 예수를 사랑했던 여자이고, 그만큼 예수만이 전부였던 여자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런 여자의 증언을 통하여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온 세상에 첫 번째로 알리게 하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천사들이 알렸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보잘 것 없었던 한 여자 막달레나를 통해 제자들이 돌아왔고, 절망했던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찾는 길이 사랑임을 막달레나는 보여주고, 그분을 만나는 길이 그분만을 특별히 사랑하는 열망임을 그녀는 보여줍니다. 그분을 만나고 난 다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가던 그녀의 뒷모습이 선합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시는 부활하신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오늘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전해야 합니다.

 

성찬례는 가서 복음을 전하여라.”는 말과 함께 미사가 끝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밝힙니다. 가서 전하라 하십니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기다리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정말 부활하셨네!”하고 전하라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사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기쁨 위에 교회가 서 있습니다. 우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한 번 일어나고 끝난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일어난 부활은 오늘 우리의 사건입니다. 부활은 바로 오늘 여기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우리가 평화의 길을 걸을 때, 예수님이 전해준 새로운 삶을 살 때, 부활은 시작됩니다. 세상이 완성될 때까지 매일 주어지는 새로운 오늘 안에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부활입니다.

 

우리는 이 부활을 믿는 사람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만을 축하하는 축제가 아니고, 우리의 부활도 함께 경축하는 날이 되십시다. 이제 다시 새롭게 부활의 증인으로 기쁘게 사십시다.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나를 휘몰아치더라도 우리 모두는 빈 무덤 앞에서 다시 힘을 내고 다시 정신을 차립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부활을 보증하셨고,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의 위력을 깨우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옳았음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줍니다. 남을 위한 죽음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을. 하느님께 대한 진정한 예배의 삶은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 하나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바치는 것이라고 하는 가르침이 참으로 옳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이었다면, 부활은 그 사랑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응답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 자신을 죽일 줄 알고, 살아 탐욕을 버릴 줄 알고, 살아 오직 사랑만이 전부로 알고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요, 기쁜 소식이며, 충만한 희망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 부활하였습니다. 오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빛이 온 누리의 모든 이들과 우리 겨레에게, 특별히 희망을 잃고 어려움 속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에게 고루 비치기를 거듭 기도합니다.

 

기쁜 부활대축일 날에, 나태주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 한수를 빌려 오늘 저의 소박한 마음의 선물로 전합니다.

 

행 복                                           

                                                     -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운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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