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2021. 4. 11. - 나해) 요한 20,19-31.
오늘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자 사백주일(卸白主日)입니다.
정신분석에서는 분석가의 해석이 이루어지고 내담자의 통찰이 생기게 되면, 이러한 해석과 통찰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 사람의 실제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이렇게 지루하고도 반복적인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 결과 새롭게 태어나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지요. 이러한 반복되는 과정을 영어로는 ‘working through’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우리 말로 어떻게 번역했냐면, ‘훈습’이라는 말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훈습(薰習, 향기로울 훈, 익힐 습)이라는 말은 불교 용어로 좋은 향을 배게 하면 그 향기가 풍기게 되는 것처럼 신체와 언어, 마음으로 계속 노력하면 그것이 마음에 머물게 됨을 이르는 말입니다. ‘나쁜 물이 들었다’라는 표현처럼 어떤 물을 들이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리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반복하여 마음을 닦아 나가는 과정. 이것을 훈습이라고 합니다. 불교의 용어를 어떻게 이리도 참 빠르게 빌려서 서양의 정신분석에 적용하여 썼는지 보면 볼수록 참 흥미롭긴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늘 기도하고 영성 생활을 해 나가는 과정도 이렇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내 몸과 마음,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스며들게끔 하기 위한 이러한 훈습의 과정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렇게 반복되는 우리의 영성 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있는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에게 아침에 일어나 묵상을 시키는데, 젊은 친구들인지라 그런지 그 시간에 많이들 잡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계속 반복해 나가면서 한 해 한 해 변해 가는 신학생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이렇게 반복하는 것도 영성 생활에 있어서의 훈습 과정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어떤 신학생은 묵상 시간에는 잠만 오고 기도하려고 하면 분심만 들어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도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요. 그렇게 기도가 잘 안 되는 그 어둠의 시기와 그 장소에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한 분심들이 올라올 때 아무 의미 없다며 회피하거나 도망가지 말고 온전히 머물러 보라고 권고합니다.
전례 주년도 매년 이렇게 똑같이 반복되고 있지요.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 안에서 작년과 올해 부활의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며, 아마 내년에 맞이하는 부활도 또한 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똑같이 반복되어 맞이하는 부활이지만, 그러한 반복됨이 내 안에 그분의 향이 더욱 더 새롭게 풍기도록 만들어줍니다. 저는 예전에는 ‘왜 나는 예수님처럼 전혀 다르고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하여 태어나지 못할까?’를 고민했지만, 요즘은 부활도 ‘살아 있음’이고 ‘생명’이기에 내가 이렇게 숨 쉬고 살아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기쁨이요, 행복임을 느낍니다. 살아 있어야 변화도 가능하기에 이렇게 존재 그 자체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지를 마음 안에서 느끼곤 합니다. 머물러 있음이 가능할 때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며 다가오는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겠지요.
저는 사제로 산 지 20여 년이 넘었지만, 부끄럽게도 한 번도 성경 필사를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재작년에 마산에서 온 신학생이 자신의 취미가 성경 필사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언젠가는 나도 성경 쓰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다행히 그러한 기회가 되어 올해부터 제가 맡고 있는 신학생들과 함께 잠언부터 시작하여 집회서, 욥기, 코헬렛, 지혜서. 이렇게 지혜 문학 오경을 손으로 쓰고 있습니다. 신학생들은 저를 잘못 만나 ‘선배들은 안 했는데, 왜 우리만 이걸 하냐?’며 지난 3월에 참 많이도 쫑알쫑알 대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빨리 쓰는지 서로 경쟁도 붙어 하느님 말씀에 천천히 맛들어가고 있습니다. 훈습의 과정은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저도 조금씩 변하고, 젊은 학생들은 더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까요.
올해 또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렇게 반복되고 훈습 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언젠가는 그리스도의 향이 내 몸에 배고, 내 얼굴에도 조금씩 조금씩 배어 나가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오늘 복음의 토마스 사도의 고백처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 고백하며 점진적으로 그분 앞에 나아가겠지요. 꽃을 만진 손에는 꽃향기가 나고, 마늘을 만진 손에는 마늘 냄새가 나듯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접하고 함께 하여 나에게도 그리스도의 향이 더욱 피어나오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