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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 이영수 신부님

오늘은 세상 한가운데 살면서도 세상의 그릇된 질서와 온갖 우상의 지배에 굴복하지 않고 다만 하느님께

속하여 한느님의 나라를 묵묵히 추구하며 살다 간 이름 없는 성인들을 기억하면서 합당한 경의를 표하고 

우리도 그런 성인이 되어야함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행복선언인 오늘 복음은 산상설교의 기초이고, 서문이자 열쇠입니다. 이 행복선언은 복음의 진수요,

산상설교의 요약이라고 합니다.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될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고, 동시에 우리가

하늘나라를 차지하는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 완성될 하느님의 나라가 지금

여기서 시작되었으니, 지금부터 그렇게 살라는 초대이고, 요구이기도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시작하려 오셨고, 하느님 나라는 그분의 사명의 초점이고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행복선언은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헤서 무엇을 해야하는 하는가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가

과연 어떤 나라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말씀이며,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하느님이 나에게 어떤 분인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새로운 가능성, 삶의 근본적인 전망을 향해 서도록 초대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행복선언은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에 힘입은 사람들이 이 세상 한가운데서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삶의 근본

지향과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인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공통적인 핵심은 세상의 욕망에 휩싸이지 않고, 바로 하느님과 

일치 안에 살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축구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교회에서 성인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핵심은 바로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 그리스도 예수와의 일치에 있습니다.


초세기 교회는 순교자들을 성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바쳐 하느님을 증거하고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음으로써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었으며 그들의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평생을 통해

드러내셨던 증거와 온전한 일치를 이루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산타 마르타 성당에서 행복선언을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참행복 선언은 그리스도인 삶을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입니다.”

“이것은 ‘참행복’이라 부르는 새로운 법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새로운 법입니다. 길을 안내하고

여정을 인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안내하는 내비입니다. 여기에서 보듯이 이 길 위에서, 이 내비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그리스도인 삶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네 가지 불행한 이가 있습니다. 즉 부유한 이, 배부른 이, 웃는 이, 모든이가 다 좋게 말하는 이입니다.”

“이는 참행복에 반대되는 것이고 고장난 내비입니다. 파멸로 인도하는 계단이 세 개 있듯이 삶을 앞으로

가도록 이끄는 계단도 세 개라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파멸로 이끄는 세 개의 계단은 내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부에 대한 집착, 모두가 나에 대해 좋게 말할 것이라는 허영, 세 번째는 마음을 닫아버리게 하는

배가 터지도록 부른 상태나 콧웃음인 교만입니다.”


마지막으로 장 바니에가 “요한복음묵상“과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이란 책에서 행복과 참행복을 여러번

이야기 하는데 몇 구절 소개해드립니다.

"참 행복은 예수님이 주신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참행복은 예수님이 주신 모든 가르침의 근본이자 모든

그리스도인의 강령입니다. 또한 참행복은 하느님니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참행복은 사람에게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합니다. 마태오복음과 루가복음에 나오는 참행복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 참행복에 대한

말씀은 복음서 전체에 걸쳐 깊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최후 만찬석상에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한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요한 13. 15-17

‘가난한 이들과 함께 먹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루가13.13-14

‘보지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요한 20. 29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루가11. 28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복되다’고 선포합니다.‘ 루가 1. 42

마리아의 노래에서 마리아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본래 참행복 Beatitude이라는 그리스어가 Happy로 번역되었고 지금은 복되다를 Blessed 번역되었는데

행복의 더 깊은 의미로 보면 이것은 Happy라는 단어보다 한층 깊은 내면의 기쁨이라는 의미를 전해주기에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봅니다.

'참으로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의 발을 씻어주고 그들과 함께 친교를 나누며 사는 것이 기쁨임를 아는

사람이면 참행복을 아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형제자매들의 발을 씻어주면 여러분에게 복이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난한 마음을 살면 여러분에게 복이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이 여러분 가까이 계심니다.'

'참행복은 우리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느님한테서 흘려나오며,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로 이루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에 한 걸음만 가까이 가기 위해서 오늘 내가 세상 것들에서 한 걸음만 떨어지면

그 한 걸음만큼 하느님과 가까워질 것입니다.

 

스티브 코비의 성공한 사람들의 8번째 습관이란 책에서 소개한 글귀 한 구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나는

나의 신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네. 나는 나의 영혼을 찾았지만 나의 영혼은 나를 피했네. 나는 어려움에

빠진 나의 형제를 찾아서 도와주었지. 그리고 나는 나의 신과 나의 영혼, 그리고 당신을 모두 찾았네.”

 

늘 어려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안에서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여기서 참행복한 자 되고, 마지막 천국에서 성인 성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전부인, 지극히 단순한 삶을 살아내십시다.

 

모든 성인들과 함께 하는 11월의 시작, 위령성월이 시작됩니다. 이제 가을이 무르익어갑니다. 떠날 때를

알고 묵묵히 그리고 선선히 떠나는 나뭇잎 한 잎만큼 이라도 제대로 본받으면서 살아야할 우리, 교회 달력의

마지막 장, 그런 위령성월을 의미있게 보내며, 성인들의 삶이 특별한 은총으로 우리와 함께 하는 11월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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