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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10월18일 연중 29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김영수 신부님 강론

1998년 염주동 성당 보좌신부 때 가톨릭 스카우트 지도자 훈련을 갔었다. 지금이야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때만 해도 염주동 성당은 광주대교구 안에서 규모가 큰 성당으로 손을 꼽는 곳이었다.

초등부가 550, 중고등부가 300명 정도였고 기존의 주일학교 교육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프로그램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주임신부님과 원장수녀님이 본당 초·중고·청년을 맡고 있는 나에게 가톨릭 스카우

트 훈련을 가라고 권유하셨을 때 그 낯선 느낌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름이 스카우트이니 대충 그

분위기는 짐작할 수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본당의 신앙교육과 연결될 수 있는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원장수녀님은 야외에서 교육받는 34일짜리 프로그램이니 편안하게 경치 좋은 곳에서 차 마시는 여유도 있을 거라면서 권유하셨고, 본당에서는 청소년 담당 수녀님, 분과장님, 교사를 합해서 모두 9명 정도가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교육에 막상 참가해보니 차 한잔 마시는 여유는커녕 밥 먹고 설거지하기도 시간이 모자랐고, 텐트 안에서 잠을 자고 낯선 분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야영 생활이 편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어떤 감명을 받았던 것은 우리와 함께 동반하는 훈련팀 강사들과 지도신부님의 모습이었다. 분명 교육생들과 같은 조건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피곤할텐데 항상 웃고, 도와주고, 따뜻하고, 친절한 그 모습이 참 매력있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갖게 되었다. 저렇게 겸손하게 봉사하면서 우애 깊고 아름다울 수 있다니훈련이 끝나고 시간이 흘러 본당에 가톨릭 스카우트를 만들고, 나는 본당을 떠났지만 상급 훈련을 받고, 훈련강사팀의 일원이 되어 훈련봉사도 하게 되고, 다시 더 높은 단위의 자격훈련을 받고 하면서 20년이 넘게 그곳에 몸담고 있는 중이다. 지금도 봉사해 달라는 전화가 왔을 때 가능한 한 참가하려고 노력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스카우트에 관한 체험을 나누는 이유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 복음의 기쁨에 쓰여져 있는 한 문장 때문이다. 사람마다 매력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고, 그 양상도 매우 다르다. 사실 세상은 부유함·유능함·아름다움·안전함·힘 등에 매력을 느끼는 반면 가난함·무능함·소박함·내려놓는 일에 관해서는 그리 강렬한 매력을 느끼지는 않는 듯하다. 하지만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란 지배하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것, 채우는 것보다는 비우는 것, 커지기 보다는 작아지는 것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어떤 성찰을 해 볼 수 있다. 나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매력을 키우고 싶은지?

 

매력에 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영국의 총리 두 명에 관한 이야기로 기억한다. 어떤 이가 사람들이 당시 현임 총리를 만나고서 대화를 하고 난 후의 소감에 대해서 일러 주었다. 현임 총리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총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똑똑한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반면 그 바로 전임 총리와 대화를 하고 나면 정반대의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즉 전임 총리와 대화하고 나면 바로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똑똑한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 앞에 그 총리 두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와 대화하고 싶어할까? 나는 어떤 종류의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나의 유능함, 유식함일까? 아니면 상대방이 자부심과 자존감을 느끼도록 하는 매력일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이라는 사람, 부활 사건이라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났고 그 만남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 바오로 사도처럼 그 변화는 하루아침에 극적으로 생겨날 수도 있고, 반면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처럼 천천히 눈에 잘 띄지 않게 진행될 수도 있다.

 

오늘 우리는 전교주일을 지내고 있다. 전교는 어떤 이를 성장이나 교회로 끌고 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사람이 사랑받는 존재로서 참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모여 하느님의 이름을 아무리 소리높여 불러도 그 안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크고 높은 십자가가 그 건물에 자리잡고 있어도 그 안에 자기 비움과 희생이 없다면, 그 하느님의 이름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그 십자가는 그저 나무장식품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 그분 안에서 누리는 기쁨, 그 믿음의 생활은 정보의 형태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의 형태로 공유된다.

 

코로나19를 맞이해서, 함께 모여서 나누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고 이에 따라 전례와 미사 참례가 어려워지면서 기존의 선교방식이 더이상 유효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 매체를 통한 신앙의 전달은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다른 한편 이 새로운 사태는 우리의 사고방식, 삶의 방식과 관행을 바꾸도록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이 소비했고, 너무 자주 멀리 돌아다녔고, 더 많이 채우려고만 했다. 멈추어서 고요하게 머물 줄 몰랐고, 만족하며 감사할 줄 몰랐고, 무엇보다 더욱 커지고 높아지려고만 했지 낮아지고 작아질 줄 몰랐다. 지금 이 시기는 무엇보다도 그동안 모른 척했던 것을 들여다보고 배워야 하는 시기이고, 그 안에 숨겨진 매력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때가 아닐까?

 

한 주간 동안 비워서 매력적인 사람, 낮아서 귀한 사람, 가난해서 풍요로운 사람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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