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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9월27일(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기념일) : 신민수 신부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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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28 05:10:55
  • 조회 수: 1016

좋은 아침입니다. 잘 주무셨지요? 진짜 오래 간만에 오는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많이 쌀쌀해

졌습니다. 주변에 보니 비염으로, 또는 감기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참으로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좋은 시기 병으로 고생하지 않게 건강 관리에 유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월요일 저희 수도회 첫 회원 수사님 기일이어서 담양 천주교 묘역에 다녀왔습니다. 기도하고 늘

식사하던 국수집에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달리는 차의 창문을 조금 열고 가을 공기를

맞으며 먼 산에 걸려있은 노을을 보고 있노라니 이 계절이 주는 것이 많은 곡식과 과일 등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고민과 생각, 차분해지는 마음, 옷깃을 진하게 스쳐 갔던

수많은 사람과 추억들이 눈가에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이 계절은 참 좋은 선물이라 여겨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 수녀님들 역시 마음을 키우는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래봅니다.

 

주변에서 누군가가 시련과 고통을 겪는 것을 볼 때면, 우리 마음속에는 연민혹은 동정이라는

감정이 일어납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연민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김이라는 뜻이고, ‘동정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김이라는 뜻입니다. ‘연민과 동정이라는 두

단어는 결국 누군가의 처지를 가엾게 혹은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라는 점에서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연민과 동정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군중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는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입니다. 즉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시고 병든

이를 치유하시면서 희망의 빛줄기를 발견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것입니다. ‘가엾은 마음이 들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스플란크니조마이(splanchnizomai)’

원래 뜻은 직역하면 창자가 움직이다’, ‘내장이 찢어지도록 아프다라는 뜻입니다.

 

유다인들은 사람의 창자를 사랑과 공감을 느끼는 자리로 보았습니다. 시각을 눈으로 느끼고 청각을

귀로 느끼며 미각을 혀로 느끼는 것처럼, 누군가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 느끼며 그들이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감싸주고픈 의지를 갖게 하는 기관이 바로 창자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연민 혹은 동정처럼 마음이 아픈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적으로 육체적인 통증을 느끼기에 그

대상을 향한 사랑 역시 마음속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고통을 겪으며 고통 속에 있는 우리를 바라보시는 에수님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연민이나

동정심이 아니었습니다. 연민이나 동정심은 성격상 높은 사람아랫사람에게 드러내는

감정입니다. 안타깝긴 하지만 내가 아픈 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느끼시는 마음인 공감

상대방의 아픔을 몸으로 함께 느끼며 그와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병에 걸려 아픈

것을 본 어머니는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깊은 사랑으로 자식의

아픔에 일치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가엾게 바라보시는 이들을 깊이 사랑하기에 그들의

아픔에 긴밀하게 일치되어 계십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의 차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사랑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무관심하거나, 모두가 겪는 고통이라고 단정짓거나, 오히려 그 정도는 약과야, 내가

너보다 몇십 배는 더 힘들걸이라고 말하면서 타인의 고통을 평가절하 하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큰

고통과 시련을 겪은 누군가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질투하거나 미워하기까지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사랑의 차원에 머무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절대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참된 행복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잘 되었음을 보고 배가 아파하는 사람은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빈첸시오 드 폴 신부는 공감에 있어서 손에 꼽히는 성인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주님을 발견하고 주님 모시듯 늘 곁에서 가난한 이, 아픈 이를 챙기는

빈첸시오 드 폴 신부는 그들 속에서 참된 행복을 발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낮은 자리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놓고 헌신한 빈첸시오 드 폴 신부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그 뒤를 따라야 합니다. 즉 내 주변 사람들이 겪는 아픔에 사랑으로 공감할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 그들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의 깊이가 깊어지는 만큼

삶의 참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마음의 크기 또한 커지고 넓어질 것입니다바로 빈첸시오 드 폴 사제의 마음의 크기와 깊이가 한없이 넓음을 바라보며, 그분의 삶을 기억하고 따르려 매순간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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