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미사
언제나 텅 빈 것 같았던 들녘엔 어느새 황금빛 곡식들이 영글어가고, 무더웠던 더위는 어느새 물러가고 청량하기 이를 데 없는 바람을 미주하노라면, 이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시던 옛 어르신네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게도 됩니다.
오늘은 그런 한가위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가신 분들과 만나고, 또 전혀 새로운 자연들과 새삼스럽게 만나는 한가위입니다.
오늘처럼 형제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쁨과 형제애를 나누는 이 명절은 사실, 매주일 하느님의 자녀들이 모여 바치는 주일 미사의 반영 같습니다. 이 날은 어려웠던 타향살이, 고생스러웠던 농사일, 땀 흘렸던 노동, 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감사와 기쁨과 나눔의 즐거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날의 기쁨을 온가족이 나누면서, 생명을 물려주고 사랑으로 길러주신 조상과 부모님을 기억하는 아름다운 효심을 길렀습니다. 특히 유교문화의 전통 속에서 孝를 인간의 근본도리로 삼아온 우리 민족은 명절이면 조상을 공경하는 차례를 지내오고 있습니다. 차례 상 대신에 지금 우리는 조상들을 기억하면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석 한가위는 이웃과 함께 하는 민족의 축제, 가족과 함께 하는 사랑의 축제. 하느님과 함께 하는 교회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교회는 이 뜻 깊은 날에 인생의 추수인 종말의 의미를 상기 시켜주고 있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셈 바쳐야 하는가를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제2독서는 수확과 공심판을 연결 짓고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다가 죽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추석의 기쁨은 고생하고 수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열매인 것처럼, 우리 신앙인도, 마지막 날, 죽음은 인생의 삶의 결실을 거두는 성취의 날입니다.
특히 오늘 복음서의 루카 복음은 재물의 축적이 인간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과 죽음 앞에서 재물의 축적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를 묻고 있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부자는 세 가지 큰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는 밭에서 난 소출이 모두 자신의 노력 덕분이고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느님 없이도, 얼마든지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수고를 몰랐던 거지요.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하느님 것이고, 하느님의 허락 없이 생명이 단 한시도 붙어 있을 수 없다는 걸 몰랐지요.
우리는 추석 날 고향의 들녘 앞에서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풍부한 소출을 주신다는 것.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창고에 쌓아 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어 먹으라고 주신다는 점입니다.
추석이라는 명절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내 잘나서 지 혼자 사는 생이 진짜가 아님을 깨닫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화해할 수 있는 시간, 감사할 수 있는 시간, 인사드릴 수 있는 시간이 남은 우리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만나서 손을 맞잡을 수도 없이 그저 쓸쓸히 갇혀 있는 사람들, 그들도 기억해 주십시다. 아직 남은 이 시간에 나보다 더 힘든 사람 한 명에게라도 기쁨이 되어주십시다.
지금 나를 있게 해 주신 모든 조상님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신 분들, 그의 영혼을 위해서도 이 미사 중에 기억해드립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