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씨튼 수녀회

성녀 글라라 동정 기념일 이영수 신부님 강론
  • 홈지기
  • 2014.08.23 01:55:53
  • 조회 수: 3954

연중 19주간 월요일-성녀 글라라 동정 기념일

 

오늘은 교황님도 누구보다도 반기실 글라라 성녀 축일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부유한 염색공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 포기하고 알몸으로 철저한 청빈과 봉사의 삶을 살았던 수도자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그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단 한 사람, 그를 말없이 따르던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글라라입니다.

 

프란치스코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나병환자의 말에 입맞춤하며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놀라운 설교에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보고 들은 글라-18세 되던 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프란치스코의 규칙과 그리스도교 정신에 전적으로 동참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프란치스코가 걸인의 행색으로 탁발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느라 땅을 베게로 삼고 살았던 반면, 글라라는 철저한 침묵과 관상의 수행으로 하늘을 지향하며 살았습니다. 글라라는 프란치스코의 가난을 가슴으로 살았으며 프란치스코의 극기를 영혼으로 실천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면서도 결코 프란치스코를 앞지른 적이 없었고 평생 프란치스코를 위해 기도 했지만, 죽기 전 그를 우리 공동체의 사부이자, 나의 사부라고 표현할 만큼 둘은 또한 하나였습니다.

 

열두 살 때 동갑내기들이 만나, 한없이 약하고 쓰러질 듯 위태로왔던 교회를 청빈의 삶으로 정결의 삶으로 깨끗이 세탁하였습니다. 로마는 부패했지만, 아씨시는 풍요로왔습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그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은 프란치스코와 글라라의 삶을 통해 빛을 보았고 그들의 실천에서 희망을 발견하였습니다.

 

죽어가던 그리스도를 살렸으며, 약해빠지던 교회를 강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철저히 글라라는 프란치스코의 영적 동반자로 감추어져 있으면서도 실상은 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유서에서 그녀는 철저히 프란치스코의 회개와 실천을 자기가 죽은 사후에도 그녀의 공동체가 이어갈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스스로는 위대한 사부의 작은 나무일 뿐이라고, 그러니 모든 공동체 자매들이 사부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묵묵히 실천할 것을 유인으로 남겼습니다.

 

프란치스코의 회개를 보았고, 그의 포기와 그의 굶주림, 그리고 그의 열정에 가득 찬 음성을 간직한 채 스스로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였던 글라라는 1253년 프란치스코가 남겨준 최초의 회칙을 가슴에 품고 잠들었습니다. 1850, 죽은 지 600년이 지나 글라라의 무덤을 열었을 때, 그녀의 시신은 하나의 부패도 입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를 사랑하다 예수가 되어버린 프란치스코와 그 프란치스코를 사랑하다 또 하나의 예수가 되어버린 글라라... 그들의 끈은 사랑이었고,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이루어낼 수 없을 만큼의 일치였습니다.

 

이번 주간, 머지않아 순교의 땅을 찾아오시는 교황님을 생각하면, 오늘 축일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성녀 글라라와 함께, 프란치스코 성인을 떠올리며, 이 위기의 시대에 하느님이 보내주신 선물인 교황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십시다. 특히 방한 준비위원회에 보낸 특별 당부 말씀대로, 그분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차분한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