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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사순제1주일(가해) 문창우 신부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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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4 05:50:28
  • 조회 수: 4079

사순제1주일(201439) 씨튼 수녀원

 

찬미예수님! 수녀님들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머리에 재를 얹고 단식과 회개의 삶을 하느님께 약속하는 재의 수요일을 보낸지 나흘째가 되는 사순제1주일입니다.


나흘을 보내시면서 여러 수녀님들께서 각자의 능력과 건강이 허락되는 한도내에서 희생과 절제와 기도의 생활을 다짐하고 실천하고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은총의 시기인 사순절 기간동안 용기를 잃지 않도록 주님께서 수녀님들 모두에게 특별한 인내의 덕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인간의 교만으로 인해서 하느님을 배반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아담과 에와의 이야기며 제2독서는 이러한 죄에 대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오히려 죄를 짓기 이전보다 더 큰 은총을 받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이러한 은총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신 그리스도께서 엄청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당신이 누릴수 있는 온갖 영예와 영광의 모든 유혹들을 뿌리치고 당신의 사명인 고난의 길을 가시는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수녀님들 중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달콤한 유혹을 받아 보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유혹은 남을 꾀어서 정신을 어지럽게 하거나 그릇된 길로 꼬인다는 말이 뜻하는 것처럼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다가옵니다. 또한 좋은 길은 좁고 나쁜 길은 넓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유혹 그 자체는 죄가 아니고 은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유혹에 빠졌을 때만 그것은 죄가 되며 유혹을 이겼을 때에는 유혹보다 더 큰 선물이 우리를 맞이 합니다. 그러므로 유혹은 우리를 더욱 더 성숙하게 만들기 때문에 예수님조차도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유혹을 당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저도 되돌아보면, 학생 때에는 유혹을 무척 많이 당했습니다. 결혼에 대한 유혹과 좋은 직장과 명예와 그리고 세상을 편하고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는 수많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혹에 지나지 않는 유혹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 수 있습니다. 유혹은 그저 유혹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유혹들은 저를 무척 성장하게 만들었고 하나하나의 유혹을 견디어 낼수록 저의 성소는 더욱 더 확고해졌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 유혹에 대한 좋은 예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보리는 한겨울의 추운날씨를 지내야만 꽃을 피우고 보리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을 때는 꽃은 피우지 못하고 커다란 잎사귀만 자라날 뿐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의 삶도 보리처럼 시련과 고난을 겪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보리 잎사귀와도 같은 껍데기만 성장을 하게 됩니다.


오늘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보리처럼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아가 보리가 겪는 겨울의 추운 날씨를 체험하셨습니다.


이제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수많은 유혹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빵의 유혹처럼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유혹이 있고 성전 꼭대기의 유혹처럼 하느님을 시험하고 싶은 유혹이 있고 세상의 화려한 유혹처럼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명예욕의 유혹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게는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싶은 유혹에서부터 좀 더 편하고 나태하게 살고 싶은 유혹과 어렵고 힘든 수도생활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시대는 너무나도 유혹이 많습니다. 아담과 에와를 유혹했던 마귀 그리고 예수님을 유혹했던 마귀가 이제는 우리사회를 유혹합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유혹에 빠지고 있습니다. 유혹에 무방비한 상태로 너무나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유혹에 넘어가게 되어 있지요.


돈에 관심이 많으면 결국 돈 때문에 부모자식 간이나 형제간에 살인과 폭력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자녀교육에 매달리는 분들은 자녀의 성공이라는 욕심을 이루기 위해 온갖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당하기도 합니다. 다시말해 교사를 매수해서 국제학교에 들어가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또 천년만년 살 것처럼 건강에 집착하는 분들은 정신과 가치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몸뚱이만 가꾸는데 온 힘을 쏟습니다.


그 결과 사방에 죽음의 문화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사회의 곳곳에 자살과 생활고로 인한 고독사, 몇 주전엔 세 모녀가 번개탄을 피워 모두 세상을 비관하며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 등 참으로 우리주변 모두가 안타까운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렇다면 어떻게 유혹에 빠지지 않고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꿀수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그 답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이렇게 온갖 유혹으로부터 자신과 우리사회를 지킬 수 있는 단한 가지 방법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일입니다. 정말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두고 진실과 정의를 바탕으로 바른 길을 가는 사람만이 자유를 누리며 그 때 주님께서 주신 은총이 지속될 것입니다. 바로 그 길이 모두가 함께 사는 생명의 길입니다.

 

이제 수많은 유혹 속에서 선택을 해야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의 편하고 안락함속에서 추위를 겪지 않은 보리처럼 껍데기만이 아름다운 인간이 될 것이냐 아니면 온갖 시련을 겪음으로써 비록 몸이 찌들고 볼품없지만 추위를 겪은 보리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간직한 인간이 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소임을 하고 있는 시설에서 혹은 학교에서 시련들이 다가올 때 광야에 계신 예수님을 생각하십시다. 우리가 무시 당하고 모욕당하고 모함을 당할 때 그것이 바로 우리를 시험하는 마귀의 유혹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그러한 것들을 기쁨으로 맞이하십시다. 유혹을 기쁨으로 맞이할 때 우리는 유혹에 빠질 수 없습니다. 결코 유혹을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유혹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어떻게 우리가 유혹에 빠질 수 있겠습니까? 보리가 풍성한 잎사귀와 혹심한 추위가 어우러져 좋은 한 알의 열매를 맺듯이 우리의 영혼과 육신도 건강한 육신과 단단한 믿음과 시련속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제가 아는 존경하는 신부님이 한 분이 계십니다. 이 신부님이 수녀원에 보내었던 딸 수녀님이 착복식(허원식)을 하게 된다고 하자 수녀님께 당부했던 글을 강론을 마치면서 나누어 드릴까 합니다.

 

'수도생활을 시작하겠다는 것, 수도자의 옷을 입는 다는 것은 신분상승의 표시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세상의 옷을 벗고 수도복으로 갈아입는다는 것은 세상을 벗고 그리스도란 예복으로 갈아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입는다는 것은 뭔가 획득하겠다는, 뭔가 상승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니라 기꺼이 이 세상에서 손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착복하겠다는 것은 가장 아랫자리로 내려가겠다는 다짐입니다. 서원하겠다는 것은 내 의지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를 온전히 하느님께 묶어두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도자들이 물 좋은 자리 찾기 시작하면 그 수도생활은 이미 볼 장 다 본 생활입니다. 수도자가 떠나라는데도 안 떠나고 버티기 작전으로 나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다시 또 없습니다. 수도자가 고상하게 꾸며진 넓은 사무실에 애착을 느끼고, 안온한 독방에 갇히기 시작하면 그걸로 끝장입니다. 주님의 옷으로 갈아입는 여러분! 늘 버리십시오. 용기를 내고 떠나십시오. 고상한 곳, 때깔 나는 곳이 아닌 저 시끄럽고 악취가 풍기는 세상의 한가운데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거기에 주님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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