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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대림 제 4주일(2025년 12월 21일) - 윤근일 요셉(광주대교구)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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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23 03:48:28
  • 조회 수: 108

 

1. 대림 시기에 교회는 주님이 오심을 준비했던 여러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사야 예언자/세례자 요한의 활동/ 오늘은 의로운 사람 요셉에 대한 말씀

요셉 성인에 대한 성경의 증언과 그분 역할을 보면서 답답한, 요즘식으로는 고구마 먹는 것 같다. 주도적인 역할도 아니고, 명확하지도 않는 모습. 대신 원인을 살피고, 강력히 항의 내지는 책임을 추궁하고. 그러면서도 신속히 판단하고 단호한 태도로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모습!

 

이런 감정이 들었던 것은 순전히 내 세례명이 요셉이었기 때문이다. 요셉의 전반적인 위치는 늘 부수적인 조연 역할 뿐이었다. 남성 중심의 유다 사회였음에도 그에 대한 소개는 뒷전이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혹은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이런 표현을 보면, 중심자리는 마리아였고, 요셉은 곁다리 혹은 연극으로 치면 지나가는 행인처럼 소개!

 

요셉에 대한 언급도 빈약하다.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소개는 상당한 부분이지마, 아버지 요셉의 행적은 상대적으로 너무 빈약하다. 제자들보다도, 군중들보다도 묘사되는 내용이 적은 편이다. 더군다나 당시 사회에서 죄인으로 취급되던 이들도 자기 목소리가 등장하지만, 요셉의 목소리나 외침 혹은 절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대로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는 말씀 그대로를 살았던 분인 듯 보인다.

 

2.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세상에 오셨다. 요셉에 대해 성경의 첫 증언은 다윗 가문에 속한 사람으로 마리아와 약혼한 사이였다고 소개된다. 당시 풍습을 보면, 유다인에게 약혼은 결혼의 전 단계가 아니라 이미 법적으로는 부부인 상태로 간주했다. 단지 혼인식 전까지는 자기 부모의 집에서 따로 살았을 뿐이고, 일반적으로 약혼 후 약 1년이 지나면 남자는 약혼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혼례식을 거행했다. <밤 늦게 오는 신랑>

 

약혼은 신부에게 결혼 지참금을 건네주는 것으로 확정된다. 지참금은 신부 소유재산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와 함께 나오는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 말씀에서 보면, 여인이 잃어버린 은전을 찾고서 이웃들에게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라고 하며 감격해하는데, 이 모습은 그들 혼인 풍습에서 비롯된 내용이다.

지참금으로 받은 은전 꾸러미를 머리에 엮어서 장식으로 달았다. 그런데 묶었던 끈이 풀리거나 떨어지면 은전은 바닥에 흩어지고, 더군다나 더위를 막기 위해 창문을 작게 만들었기 때문에, 방은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여러 날 여러 차례 방구석을 쓸고 찾는 중에 마침내 찾아내고서 기뻐하는 모습을 비유로 들려주는 대목이다. 여하튼 만일 약혼이 깨지면, 파혼을 제기한 쪽이 결혼 지참금의 권리를 포기해야 하고, 벌금까지도 부담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는 것이 그들 풍습이었음을 보면, 남모르게 그냥 손해를 보려는 요셉은 일반적이지 않다.

 

3. 요셉은 법대로 사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당연히 신뢰가 깨졌고, 부정한 상태에 있는 상대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가 선택할 방법 하나는 법대로 고발하는 것이다. 유대법에 따르면 부인이나 약혼녀가 간음하면 원칙대로 돌로 쳐 죽였다. 그러나 고심 끝에 요셉은 예상과 달리 남 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결심이건 오해이건 한 번 자리 잡은 생각의 틀이 바뀌는 것이 참 어렵다.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다.’는 표현이 그 심정을 잘 보여준다.

사람 생각은 잘 바뀌지 않는다. 틀에 박히면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 그쵸? 하느님 역사를 뒤바꿀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분명 요셉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이다. 마치 <희망이 무너진 어둔 밤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암담한 처지가 그의 현실이었다.

 

이때 하느님의 소리가 들려진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성경은 이 말씀을 듣고서 요셉이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순명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단박에 정리할 수 있었을까?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얽히고 꼬인 복잡한 문제를 대면하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포기하거나 끊어버리거나 아니면 하나씩 끝까지 추적하거나 . 그러나 요셉은 우리에게 다른 식의 길을 보여준다. 모든 문제를 내가 붙들고, 내 계획과 의지만으로 다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당장은 이해되지 않지만, 하느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서, 그 섭리에 의지하고 굳혀진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의탁한다. 해명을 듣고서 납득된 것도 아니고, 내가 가진 지혜로 알아듣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이미 생각을 굳힌, ‘완고하게 변해가고 있던 자신의 그 마음을 내려놓는다. 복잡한 자기만의 계산을 그만둔다. 요셉은 하느님의 계획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다. 성경의 이 대목을 보면서 신앙이라는 것이 또한 의탁하는 것임을 생각한다.

(반면에 정반대의 모습을 독서에 등장하는 아하즈가 보여준다.: 그는 인간적인 수단과 자신의 머리와 자신의 얕은 지혜를 믿었다. 자신이 세운 계획과 설계한 방식만을 고수했다. 우리네 방식과 비슷하다. 사악한 그는 예언자를 거부했고, 얕은 술수에 의지할 뿐이었다.)

 

4. 요셉처럼 믿고 내맡기는 모습(의탁함)’은 마리아에게서도 드러났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다.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이런 모습을 보면서 부전자전, 모전자전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고, 그 행적을 본 이들은 놀랐다고 한다. 동시에 그분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너그러웠고 자비로웠다. 예수님의 능력과 품성, 인격과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버지 하느님 뜻을 행하는 그분의 태도는 스스로의 깨달음도 있겠지만, 또한 배워 익히고 전수받는 과정도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성품과 기질, 천성은 그 가정 안에서, 그 부모 밑에서 자연스레 체득된 것이 분명하다. 실제 깊은 침묵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따른 아버지 요셉이 행한 태도는 예수님에게서 드러난다. 주님은 광야에서 깊은 침묵 가운데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구원사업을 시작하셨다. 어머니 마리아도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당연히 마리아가 들었던 축복의 말씀은 요셉에게도, 예수님께도 함께 들려진 말씀일 것이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교회는 주님의 길을 준비한 이들을 소개하는 말씀을 들으며 대림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수녀님들!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한 요셉 성인의 삶을 묵상하면서 성탄절을 잘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연륜이 깊어지는 만큼, 하느님의 뜻을 더 잘 알아듣는 신앙의 길을 보더 더 충실하게 걷게 되기를 청하며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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