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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설 - 이영수 신부님
  • 홈지기
  • 2023.01.22 21:56:01
  • 조회 수: 1428

오늘은 설 날, 음력 새해 첫날입니다. 날 수 샐 줄 알기를 가르쳐 주신 하느님 덕분에, 우리는 오래전부터 날짜의 기준을 정해놓고 한 해를 돌아보며, 하느님과 조상들을 기억하면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고, 새해에도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축복 속에 풍요로운 결실을 맺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단지 우연한 연속이 아니라 우리의 성장과 성숙과 삶의 열매가 온전히 하느님의 손으로 빚으신 일임을 깨닫기에, 우리의 시간 속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하느님을 우러러 바라보게 됩니다.

 

어차피 새로운 시간이란 달력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다짐과 결심 속에 걸려 있는 것이기에, 금년 새해는 정말로 다시 새롭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이 새로움은 시간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결심이, 다짐이, 각오가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날은 나의 결심 속에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며, 축복입니다.

 

그리스철학의 바탕이 된 서양의 시간인 양력은 태양이 중심입니다. 농업이 주가 아니라 수렵과 목축이 중심이었던 그리스에서는 시간은 직선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루가 '가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양의 시간인 음력은 순환적 시간입니다. 하루가 아니라 순환되는 절기가 더 중요했습니다. 동양은 수렵이 아니라 농업이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농사일을 위해서는 달이 기준 되는 시간의 구분이 더 유용했기 때문입니다. 달은 태양처럼 뜨고 지는 것이 아니라, 차고 기우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은 그 절기에 맞추어 밀물과 썰물로, 순환되고 회전합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조화의 대상'이었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요 조각으로 인식됩니다. 자연스럽게 '윤회'에 대한 사고가 등장했고 生과 死마저도 하나의 생명의 순환과정으로 이해했습니다. 이 순환적 사고는 이미 세상을 떠나 완전히 우리와 단전된 듯한 조상들의 영혼을 돌보는 데에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의 명절마다, 떠나가신 분들을 가장 먼저 앞세우고 기억합니다. 그분들이 계셨기에 이 생명도, 이 신앙도, 그리고 우리의 희망도 존속될 수 있음을 우리는 미사를 통해 기억하면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이렇게 만납니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은 이제 하느님께 맡겨졌습니다. 전체를 조화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시간을 끝내 당신의 시간과 일치시켜 줄 것임을 우리는 믿고 의탁합니다. 나 하나 잘 되게 하시고 가 아니라, 다른 모든 이를 위하여, 고통당하고 억압당하고 눈물 흘리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나를 그들의 일부로 쓰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남겨진 시간을 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그래서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가를 오늘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잔치에 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라고 가르치십니다. 허리에 띠를 띤 사람은 일하는 종입니다. 종은 주인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섬김의 삶을 살라 재촉합니다. 그리고 준비하고 있어라.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있어라.” 하십니다. 인생을 신중하게 처세하라는 말입니다.

 

사실 인생이란 하느님이 안 계시면 허무하기 그지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이 한 해가 하느님을 향해 깨어 있고, 서로 섬기는 나날이 되어, 오늘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것처럼, 우리의 영원한 천상고향을 그리며 살다가 마지막 하느님을 뵐 수 있도록 준비하라 일러주십니다.

 

음력 설날 아침에 한 해 동안 가슴에 새기며 살고 싶은 성경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금년 새 사재 최동현 신부가 보내온 서품 상본에 새겨진 신부님의 모토, 성서 구절입니다.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시편 4611)

 

멈추라고 합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바쁘게, 잡다한 생각으로 살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방향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자연재해며, 수많은 사건들 하며 질병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모든 일을 마음속에 곰곰이 되새기며 사셨던 성모님처럼, 이제 우리도 자주 멈추어 서서, 하늘을 우러러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시편 461-12절에서 3번 나오는 후렴구는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산성이시네그러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타이르십니다. 46장의 시작의 말씀은 하느님은 우리의 힘, 우리 숨는 곳. 어려운 고비마다 항상 구해주셨기에입니다.

 

금년 새해에도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예기치 못한 고통과 도전들이 우리를 괴롭히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우리를 이끄시는 분의 현존을 생각하도록 멈추어 서서 하느님께 신뢰를 두도록 격려하십니다.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

 

새로 시작되는 한 해는 우리 가까이 있는 수도 가족은 물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에 대한 관계를 새로이 하며, 행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시편 제46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

 

-오늘의 시편에서-

 

지존하신 하느님이 우리의 피난처,

우리의 힘이시다.

각박한 현세생활에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두려움

익히 알고 계신다.

아무도 그분을 의심할 자격이 없으니,

비극적인 동란으로

온 지구가 뒤흔들리고

가공할 원자력이

인류의 전멸을 위협할지라도

그분을 믿으라.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신 다스림은

영원한 다스림,

인간의 변덕,

자연의 괴이한 이변도

그분의 구원경륜 헛되게 못한다.

나라들은 서로 싸우다

차례로 멸망하고,

찬란하던 문명도

어느덧 이울어 사라지고

마침내 지구도 언젠가는

연기 자욱한 잿더미로 화할지라도

하느님이 우리는 저버리지 않으시리라.

그분은 영원히 우리의 피난처,

우리의 힘이시다.

 

주위를 둘러보아라.

역사를 더듬어 보아라.

어느 시대에나 찬연했던 그분의 위업

마음속에 되새기며,

처지려는 정신 새로 가다듬어라.

그러면, 그분의 믿음직한 말씀

다시 듣게 되리라.

초조해하지 말고 마음을 놓아라.

내가 그대의 변함없는 하느님이니

잊지 말아라.

어김없이 내가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

 

정녕 하느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며

언제나 마음 든든한 우리의 피난처,

우리의 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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