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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튼 수녀회

연중 32 주일 (11월 7일) - 이영수 신부님
  • 홈지기
  • 2021.11.08 20:11:52
  • 조회 수: 2623

 

아름다운 가을 단풍들을 바라보면서, 영생의 희망을 가진 노년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이 아름답기만 하던 단풍잎들 마저 떨어져 내리고 생명 있는 것들이 다시금 대자연의 품 안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묵상하게 하는 은혜로운 11월, 위령 성월을 보내면서 참된 신앙인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오늘 성서는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2021년도는 전례력으로 나해, 마르코 복음의 해라고 합니다. 마르코 복음은 4 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인 복음서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성서를 시작하면서 하신 첫 말씀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 책의 제목대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구원자이신 그분이 기쁜 소식 자체임을 만대 선포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형제가 되는 새로운 세상, 하느님의 나라가 되도록 하기 위해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서의 목적은 첫 번째로 그리스도론. 예수는 누구인가, 누가 구세주이고 기쁜 소식인가, 그리고 두 번째는 그분을 추종하는 제자 정신, 즉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깨닫고 믿도록 할 복음의 선포자가 되기 위해 생활 속에서 선택해야 될 제자 정신과 자세를 가르치는 책입니다.

 

특히 당시 박해중에 있는 신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받아들임으로써 예수님을 따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시키려 한 책입니다. 그래서 마르코 복음서는 생명을 바쳐 인간을 구원하시려 하시는 고난 받는 야훼의 종이신 예수를 강조한 복음서입니다. 그러므로 수난사의 시작 부분인 예루살렘 입성 11장 ~ 16장까지 4분의 1이 수난사로 엮어져 있습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연중 시기를 마감하는 시기에 오늘 봉독 하는 마르코 12장은 당신의 수난을 앞두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특히 제자 정신을 가르치십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과부라는 이 표현은 단지 남편이 없는 존재로서, 더 이상 자식을 보지 못한다는 슬픔과 남편의 보호를 받지못 한다는 현실적 어려움이라는 두 가지 불행에 처한 사람들로 대표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고아나 이방인처럼 취급받는 동시에 율법과 하느님의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성서 안에서 과부들은 온전히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긴 신앙인들의 새로운 표상으로, 예수님을 보호자, 반려자로 맞이하여 오로지 하느님의 일에만 모든 것을 몰두하게 만드는 하나의 이상적인 영적 삶의 표상으로 받들어지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오늘 독서와 복음에 등장하는 과부들이 그렇습니다. 이 두 과부의 인생은 분명히 다른 길이었지만, 봉헌을 통해서 드러난 그들의 의지는 한 가지 입니다. 봉헌이란 헌신과 투신의 외적인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헌신이란 믿고 온전히 내어 맡기는 삶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그 헌신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그 극진한 사랑을 보시고 경탄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마르코 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인데, 마르코 복음사는 모름지기 예수의 제자 되려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간단하면서 완전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부는 예수님이 갈릴레아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긴 여정 중에서 여러 번 반복하여 강조했던 제자 정신을 실천했습니다. 참다운 제자 정신은 예수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사랑의 헌신에 있습니다. 이 생생한 예를 통해 마르코는 다시 한번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핵심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도 않은 빵을 선선히 내어주고, 외적으로 자신이 가진 전부인 보잘것없어 보이는 램톤 두잎 전부를 모두 헌금함에 넣는 이 과부의 넘치는 사랑의 행위를 보시고 예수님은 기뻐하십니다. 자신들의 내일과 운명을 이 세상이 아니라, 오로지 한 분,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구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과부들의 행위는 너그러움의 대명사로 헌신의 본보기로 그리고 예수의 제자로 본모습으로 보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에게서 모든 것을 구하고 내일을 기약하는 자들에게 오늘 하느님은 언제나 가까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말하자면 예수의 영성 생활의 핵심은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며 언제나 함께 가까이 계신다는 깨달음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동트기 전 아침 일찍이 그리고 밤늦도록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에서 제자라는 말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결국 참 구원은, 참 행복은, 참 자유는, 영원한 생명은 누구보다도 뭘 더 많이 하고 적게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나의 전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헌신과 투신에 달려 있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전부를 던지지 않으면 전부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지요. 하느님이 나에게 전부라면 전부를 내어 드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생활 성서에서 역은 책 이 시대 성자에게 행복을 묻다 에서 우리 시대의 성자(마더 테레사, 토마스 머튼, 삐에르 신부, 김수환 추기경, 핸리 나윈, 에이트 슈타인, 예수의 살드 푸고, 이태석 신부, 돔 핼더 까마라) 아홉 분의 영성가들의 삶과 필립 얀시가 저술한 영원을 순례길에서 만 13 일의 스승들 - 그들이 나를 살렸네 에서(루터 킹, G.K 채스터 턴, 폴 브랜드, 로버트 콜스, 마하트마 간디, 존 던, 앤도 슈 사고, 핸리 나윈 신부 등) 13분의 생애를 읽으면서, 가슴에 와닿는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그들이 하나같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며 하느님이 우선적인 삶을 살았던 그들을 보면서 , 저 자신은 너무 부끄럽고 초라하기 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편 아직 남은 생애, 하루하루의 삶 더 사랑하고 더 감사하며 살 것을 다짐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하느님은 그 무엇보다도 미천함을 활용하길 원하신다. 하느님께서 그 비천함을 좋아하신다. 는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에 다시 큰 위안을 느낍니다. 오늘 우리도 헌신과 봉사와 나눔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정신을 다시 배우고 깨달아, 참된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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