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복음적 행동의 본질은 곧 사람이고 사랑입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법만이 보이고 사랑은 보이지 않고 절차만을 강조하는 지도자들 속에서
예수님은 달리 보시고 달리 판단하십니다. 따지고보면 오늘 회당장의 불만이 이유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이유는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그 이유보다 휠씬 더 본질적인 문제를
보십니다. 사람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가 안고 있는 고통의 심연을 보십니다.
우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았을 그의 삶을 보시고 그의 아픔과 연대하십니다.
그리고는 그 아픔 속에 나서서 함께 뛰어드십니다. 그로 인하여 법의 본질은 연민이고
질서의 본질은 사람이었으며 그 사람과의 연민을 우선시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의 본성임을 일깨우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탄식, "이 답답한 사람들아!" 하시는 그분의 음성이 우리를 비켜서 있기를 희망합니다.
18년 만에 사람으로 돌아온 그는 보이지 않고 오직 범법의 주체만 보고 있는 그들의 시선 속에
이 교회도, 우리자신도 함께 포함되지 않았는지 자문해 봅시다.
가문비 나무의 노래 25주간 날의 묵상에서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진정한 영성은 우리의 의식이 더 깊은 단계로 더 높은 단계로 확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영성은 우리의 의식이 소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소명은 이웃의 필요를 헤아려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무엇보다 분명히 해야할 물음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 삶이 어떤 사람, 또 무엇에 도음이 되어야 하는지 묻는 것이지요.
우리 안에 늘 소명이 살아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 버리고
그와 함께 믿음도 마비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애쓸 때, 우리 삶은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서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부름 받은 초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