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입니다.
어느 가난한 집에 무명의 권투 선수가 있었습니다. 어린 여동생과 눈먼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그 권투 선수는 도장에서 선수들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 주고 받은 돈으로 저녁이면 쌀 한 봉지를
사들고 지친 몸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그는 링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딸의
손을 잡고 아들의 묘지를 찾은 어머니는 이렇게 물먹였습니다.
“아들아, 얻어터지고 쓰러지고 피흘리기를 밥먹듯 했을 터이니 얼마나 고통스러웠느냐? 이 어미가
그동안 먹었던 것은 밥이 아니라 너희 살이여 피였구나. 우리가 너를 먹고 살았으니 너는 죽어 땅에
묻힌 것이 아니라 내 몸 속에 살아 있느니라.”
이것은 <어느 화요일의 오후>라는 단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와 동생을 위해서 벌어온
그 밥이 어찌 식탁에 놓인 보통의 밥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나자렛 예수님께 모든 것을 걸고 추종했던 제자들은 최후의 만찬이 되고 말았던 그날 밤, 과월절
최후의 만찬 식탁에서의 의미심장한 말씀이 새벽 하늘처럼 다가왔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하시더니 이튿난 정말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 까칠까칠하고 초라한 빵 한 덩이를 자신의 혼백을 담아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내어 놓는다고 했을 때, 그것은 상징이고 비유의 말씀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상체를 받아 모신다는 것은 부활하신 영광의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살아생전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시던 예수님의 모든 삶을 받아 모시는 것입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마다 예수님의 전 생애와
죽음을 기억하며 그분의 모든 삶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체성사 안에는 베들레험 마굿간의 여물통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탄생하신 강생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척박한 고난의 땅 갈릴래아에서 목수 일을 하던 노동자 예수님의 모습과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버림받고 소외된 죄인들과 어울리시며 오해받고 배척당하실망정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며 길잃은 양을 찾아 나서시는 착한 목자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십니다. 높은 사람이 되어
대접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시며 몸소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신 예수님이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 안에 현존하십니다.
그러므로 성체 안에는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시는 놀라운 하느님의 계획이 담겨져 있습니다.
즉 멀어졌던 하느님과 인간을 다시 결합시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과 일치시키려는 구원계획이
들어있고 갈라진 사람과 사람을 한 몸으로 일치시키려는 놀라운 계획이 들어있습니다.
이토록 경이로운 하느님의 계획과 심오한 신비가 담겨 있는 성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화두입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을 그대로 수용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안에 교회의 영적 전 재산이 내포되어 있다.’ 하였습니다.
그리므로 본질적으로 교회는 성체성사로 살아갑니다. 사제도 성체성사 때문에 있고, 신자들도
성체성사를 위하여 모이는 백성입니다. 성체성사는 한마디로 먹을 것이 되어주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도 명확합니다. 교회는 바로 먹을 것이 되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고, 신앙은
바로 내 자신이 먹을 것이 되어주는 존재로서의 거듭남을 이야기합니다.
성체는 그저 눈에 작은 조그만 빵쪼가리가 아닙니다. 밥이 한 그릇의 영양 덩어리만이 아니었듯이
성체는 하느님의 땀과 하느님의 눈물,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하느님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들은 어느새 하느님의 얼굴을 닮아가고, 하느님의 냄새를 닮아가며, 하느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성체성의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성체는 우리가 하느님을 닮는 일입니다. 밥이 되어주는 삶을 사는 일입니다.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것처럼 성찬은 우리 모두를 변화시키는 성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실천하게 만드는 성체를 통해 우리는 모두 거룩한 사람들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변화를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까를로 까레토 은수자가 사막에서 남긴 감명깊은 신앙고백을 이 축일 아침에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내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우주와 성서와 성체가 그것입니다.
나는 내게 우주를 보여 주는 별빛 아래서 기도할 수 있고,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마주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나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성서에서 세상의 구원자로
나타나시는 그분의 현존 자체인 성체 앞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내게 성체는 우주의 압축이고, 성서의 요약입니다.
세 가지가 다 하느님께 관련되어 있고 내가 마주하여 기도드리기에 합당하지만 세 번째 것, 즉 성체가
가장 훌륭합니다. 성체는 은총의 충만함이고, 성서의 신비 속에 감추어 있는 진주며, 하느님 말씀의
밭에 있는 보석이며, 임금이신 하느님의 비밀입니다. 성체는 내 발자취 곁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이시고, 내 배낭 속에 들어 있는 빵이며, 인간의 마음 가까이에 있는 우정입니다."
성체는 하느님 백성의 길에 동행하여 광야를 횡단했던 구름과 같으며, 한밤중에 길을 안내해 준
불기둥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이 밤보다 더 밝은 것은 없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