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오늘은 사순절 제4주일, 기쁨의 주일이라도 합니다. 오늘 전례는 사순절의 순례의 여정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합니다.
고향을 찾는 자녀들의 마음은 언제나 항상 따뜻하고 편안합니다. 고향이 좋은 것은 그곳에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누울 자리가 있으며 수고하지 않아도 그곳엔 먹을 음식이 있습니다.
살기가 외로웠던 자들은 거기서 힘과 위안을 얻으며, 살기가 또 좋았던 자들은 거기서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은 언제나 그립고 따뜻한 곳입니다.
오늘 복음은 죽음과도 같은 삶에서 다시 아버지 집을 찾아, 아버지의 조건 없는 사랑의 환대를 받는 기쁨과 새로운 삶, 부활의 기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특히 금년 자비의 희년을 보내는 우리에게 더욱 실감을 느끼게 하는 비유입니다. 요사이 자비의 희년 덕분에 본당 마다, 가는 곳마다, 여기저기에서 렘브란트 작가의 ”탕자의 귀향“이라는 그림을 보게 됩니다. 희년의 로고이기도 하고요.
이 그림은 1662년도에 캔버스에 유채화로 세로가 2미터가 넘는 거대한 이 화폭은 현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곳에 있는 에르미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의 대 영성가인 헨리 나윈 신부는 이 그림을 보기 위해서 비행기로 날아가 이틀간이나 이 그림 앞에서 묵상을 하고 “탕자의 귀향”이라는 걸작품을 출간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루카복음 15장을 통해서 새로이 만나는 위대한 스승 두 분, 렘브란트와 헨리 나윈 신부님을 간단히 소개하려고 합니다.
먼저 이 돌아온 탕자라는 이 그림은 강렬한 빛의 화가라고 불리운 렘브란트가 죽기 2년 전인 그러니까 1667년에서 68년경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로 1.8미터 , 세로 2.4미터의 이 그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폭격을 피해 우랄 산맥을 넘어 현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이미 젊어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유명세를 얻었으며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지요. 아내가 죽고 네 명의 자식 중 세 명의 자식을 어렸을 때 잃었습니다. 방탕이 시작되었고 아이를 길렀던 유모와 바람이 나기도 했고 그 일로 인해 세간의 지탄을 받고 서서히 모든 것을 잃어갔습니다. 말년의 렘브란트는 결국 빈민촌에서 보내며 마지막 열정을 불살랐는데 돌아온 탕자는 바로 그 시절에 그려진 마치 렘브란트의 고백성사와도 같은 그림이라 하겠습니다.
아마도 렘브란트는 자신을 이 죄 많고 방탕했던 둘째에 투영시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자신의 죄와 방탕했던 생활로 노년에 외로움과 가난에 시달렸던 그이지만 그는 이제 자신이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그림을 끝으로 세상을 마칩니다.
돌아갈 곳이 남아있게 하는 것이 바로 회개이자 용서입니다. 렘브란트가 만난 하느님의 얼굴이 자비와 사랑이신 아버지였습니다. 평생을 큰 아들의 마음으로 삽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선택은 큰 아들이 아닙니다. 비록 죄 많고 허물 많고 상처로 뒤덮인 인생이라 할지라도 끝내 아버지 앞에 거지꼴이라도 무릎 꿇을 수 있는 이 작은 아들의 돌아옴, 탕자의 귀향은 렘브란트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바로 자기 구원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이 그림의 핵심은 아버지의 손에 있다고 합니다. 이 손에 모든 빛이 모여 있고 그 안에 화해와 용서 치유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들 뿐 아니라 아버지도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반 장님인 노인이 흐느끼면서 아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상처받은 이들을 축복하는 모습에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아들의 어깨를 만지는 아버지의 왼손은 매우 강하고 근육질입니다. 그러나 오른손은 매우 세련되고 부드러우며 섬세한 어머니 손입니다. 그것은 마치 안도감과 위로를 주는 엄마의 손인 여성의 손이라고 합니다. 렘브란트는 밝은 빛으로 강조된 아버지의 인자한 얼굴 모습과 흰 수염, 그리고 핏기 없는 손길은 인간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쥐어뜯긴 것같이 보이는 엉성한 머리에 누더기 옷을 걸친 아들은 죄 많은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고요. 어둡게 묘사된 형제들은 시기와 무정과 죄악을 상징합니다. 인간 내면의 사악한 마음과 그에 따른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로 성경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한 렘브란트는 분명 역사상 위대한 종교화가 임에 틀림없습니다.
헨리 나윈 신부님은 그의 책 “탕자의 귀향” 서문에서 렘브란트의 이 그림을 처음 본 이야기와 함께 이 책에 대한 안내 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직자이자 대학 교수였던 헨리 나우웬이 렘브란트의 그림 <탕자의 귀향>을 처음으로 접했던 때는 1983년이다. 당시 그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자행되고 있는 폭력과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크리스천 공동체들이 무엇이든 힘닿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누비는 고단한 순회강연을 마치고 막 돌아왔을 즈음이었다. 프랑스 트로즐리에 있는, 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따듯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라르쉬 공동체에서 몇 달 머물고 있던 중이었다. 하루는 공동체 안에 있던 친구의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방문에 붙여놓은 커다란 포스터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첫 만님이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뜨거운 친밀감, 붉은 망토의 온화한 톤, 소년의 겉옷에서 반사되는 황금빛 그리고 양쪽을 한꺼번에 휘감고 있는 신비로운 광채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p.13)
그로부터 3년 후, 러시아를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원작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이틀이나 <탕자의 귀향>을 묵상했고, 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봤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실물보다 크게 그린 거대한 <탕자의 귀향> 그림 앞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던 나우웬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그림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음미했다.“
그리고는 그는 각각의 인물이 담고 있는 의미들을 렘브란트와 자신의 삶을 투영시켜 정밀하게 해석해 책에 옮겼습니다.
헨리 나윈 신부님은 자신의 모습을 탕지에서 큰아들의 모습으로 빗대는 순서를 거쳐, 끝내 슬픔과 용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징되는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소명을 받아들이는 자리에까지 이릅니다. 대부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부르심이라고 생각하지만, 헨리 나우웬은 이보다 ‘더 큰 부르심’을 듣게 합니다. 용서하고, 화해하며, 치유하고, 잔칫상을 내미는 두 손이 바로 우리의 손이어야 한다는 소명입니다.
나우웬은 ‘돌아온 자식들을 환영하며 잔치를 여는 아버지‘는 죄에 대하여 깊이 슬퍼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을 때, 너그러운 마음을 품게 될 때 가능한 것임을 설득력 있게 들려줍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할 때 우리의 영적 여정은 종착점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며, 진정한 안식처 또한 찾지 못한 것”이라고 못 박습니다.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을 오래도록 묵상한 끝에 도달한 결론은 간단하고도 분명합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이 책 끝 부분 218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서는 그런 소명이 두려웠습니다. 오랜 세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게 궁극적인 부르심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내면에 자리 잡은 작은 아들 뿐만 아니라 큰아들을 돌이키게 해서 반가이 맞아주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데만 해도 영적으로 큰 수고가 필요했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아직도 나는 집으로 돌아기는 도중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집에 가까워질수록 돌아서라는 명령을 뛰어넘는 더 큰 부르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집에 돌아온 자식들을 환영하고 잔치를 여는 아버지가 되라는 바로 그 소명입니다.”(p.218)
“탕자의 귀향” 책에서 이 소명은 오늘도 우리에게 거듭거듭 말씀하시는 교황님의 말씀,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외침이 메아리 쳐 옵니다.
“그래서 렘브란트의 그림 포스터를 만난 지 2년 만에 하버드 대학 교수 자리를 내놓고 불란서 트로즐리 라르쉬로 돌아갔습니다. 꼬박 한 해를 거기서 지적장애인들과 더불어 평생을 보내도록 부르셨는지 확인하고 싶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 한 해 동안 렘브란트와 ‘탕자’에게 특별한 친밀감을 갖게 됐습니다. 하느님이 그 네덜란드 친구를 평생 같이 갈 길벗으로 주신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연말이 다 돼갈 즈음, 마침내 라르쉬를 새로운 집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토론토에 있는 라르쉬 공동체 ‘데이브레이크’의 식구가 되기로 한 겁니다.“(p.17)
“탕자의 귀향”은 1992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생활의 터전을 옮기고 10년 후인 1996년, “탕자의 귀향”에 대한 텔레비전 특집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에르빡주 미술관을 방문할 준비를 하는 도중 심장마비로 그가 그토록 바랐던 ‘아버지의 품’이 있는 고향에로 귀향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을 헨리 나윈 신부님의 “자비를 구하는 외침“이라는 책의 일기 4월 10일 자의 일기 중의 기도로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주님, 저에게 믿음을 주소서. 주님의 한량없으신 자비와 끝없는 용서, 그리고 측량할 수 없는 선하심에 대한 믿음을 주소서. 저의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을 수 없다든지, 주님의 자비스러운 손길이 닿기에는 너무 멀다는 생각에 스스로 빠져들지 않게 하소서. 주님으로부터 달아나지 않게 하시고 거듭 거듭 주님께로 돌이키게 하소서. 밤중에 주님 곁을 떠났던 유다처럼 달아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이 거룩한 주일에 축복하소서. 주님 그리고 주님 사랑의 현존을 더욱 친밀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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