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Merry Christmas! 그런데 왜 우리는
성탄을 축하하고 있습니까? 그저 예수님 생일이기
때문일까요? 아님 남들이 그냥 축하하길래 하는 걸까요? 성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일반 사람들은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성탄절에는 내가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 나온 유머를 보니 저와 같은 솔로가 받고 싶은 선물 1위는 ‘애인’ 이었습니다. 2위는 그게 안되면 크고 단단하고 뾰족한 눈이었고, 3위는 우박, 태풍, 홍수, 폭우, 한파, 해일이었고 4위는
호환마마였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웃다가 이 선물을 요약해 보니, 내가
행복하던지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을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성탄은 내가
바라는 것을 얻는 날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 평화의 왕은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평화의 왕의 백성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이렇게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일은 그렇게 하시면 안되죠. 우리에게 당신 아들을 보내신 것까지는 그렇다 칩시다. 그래도 이치대로 하신다면 로마 황제의 아들은 못되더라도, 적어도
헤로데의 왕실에서 왕자로 탄생시켰어야 했습니다. 저렇게 초라한 갈릴래아 촌구석의 부부의 자식으로 아들을
보내시면 누가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정말 모르십니다. 사람을 그렇게 떠보시는 법이 아닙니다, 하느님!” 그런데 저는 복음 묵상 중에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라는 구절에 마음이 걸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유에 태어나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아들을 못 알아보게 하시기 위해서 구유에서 태어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여관에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셨지만, 우리는 그 분을 받아들일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너무 바쁘게 지내다 보니 하느님을 받아들일 자리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오늘 나는 하느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 과연 하느님께서 머무실 자리를 만들어 놓고 있었는지? 성탄을 준비하느라 판공성사며 전례 연습하면서
바쁘게 보낸 우리가 정작 가난한 이웃에게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선물과 오붓한 가족의 파티
자리에 어려운 친척이나 이웃이 앉을 자리가 없을 때, 그 때가 바로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문전박대하는
순간입니다. 몸을 풀어야 하는 하느님의 어머니를 외양간으로 내모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세주를 영영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요상한 하느님의 술수에 넘어갈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이 없는 교회, 가난한 이웃의 몫이 없는
교회, 가난이 없는 사회를 꿈꾸지 않는 교회가 무슨 염치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갓난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을까요? 흔히들 성탄 시즌에
느끼고 바라는 감상들은 연말연시와 겹쳐 들뜬 마음으로 축제에 치중해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 낮 미사에서는
어둠을 비추는 빛으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주는 메시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묵상하고,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가르침을 찾아야 합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란 성서 말씀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환하고 투명한 것 같지만 어두움이 폭넓게
널려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진실을 외치고 증언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몸짓들이 공권력에
의하여 잔인하게 말살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국민의 50% 이상이 말씀이신 예수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정치인 중에도 많은 이가 그리스도인이고, 역대 대통령도 그리스도인이 여러 분이 있었습니다. 과연 지도자들이 말씀이신
예수님을 진정 따르고 있는가? 기도 따로 행동 따로 신심 따로 하는 위선적인 군상들 안에 자리하고 있지
않는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성탄절 덕담에서 교황청 꾸리아 사제들에게, 권력과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본분을 잊은 영적 치매에 걸렸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치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질병입니다. 사제가
자신이 깜빡깜빡 까먹으면 건망증이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치매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수도자도 마찬가지이고, 일반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인가? 오늘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 구세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가장
낮은 사람의 모습으로 힘없고,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힘 없고, 돈 없고, 배운 것 없어서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외면하는 이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책임 있고 권한이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진실을 감추고 위선적인 발언을 하면서 말씀이신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하느님을 속이고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영적인 치매입니다.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미사 중에 하느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들이 예수님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이름을 빌린 직업적인 가르침이 아닌가 반성해야 합니다. 남의 재산을 밤새워
지켜주던 목자들로 의미되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민중, 대자연을 대표하는 가축들, 그리고 천민으로 상징되는 요셉, 마리아는 모두 기득권이 없는 소박하고
진솔한 사람들로, 이들은 참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직접 보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기득권자들은 예수님을 모르고 있었고, 추후에는 예수님을 거부하게 됩니다. 오늘의 교회 현상도
가시적, 재정적으로 풍요해지면, 그 기득권을 유지하느라고
예수의 참모습을 외면하게 됩니다. 가난한 교회일수록 참 빛, 말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수 성탄 대축일은
매년 오고 있지만, 성탄의 참 의미를 살아 있고 현실적인 복음으로 고백하는 데는 큰 반성과 회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성탄대축일 밤 미사 - 변찬석 신부님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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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0 부활제3주간 월요일 - 이영수신부님
홈지기
201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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