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20주간 수요일
여름세미나 미사 강론. 이영수 신부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어느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똑같은 두 문장이 반복되는 가운데에 끼어 있습니다. 어제 복음의 마지막에 “그러니 첫째가 꼴찌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라는 말씀에 뒤이어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들려주시고 다시금“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라고 비유를 끝맺습니다. 어제 복음에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온 자신들이 받은 보상에 대해서 묻습니다. 예수님은 백배의 상을 약속하신 후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을 향해 걷는 스승 곁에선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받게 될 보상만으로 기대가 부풀어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부각됩니다. 특히 이 비유에서 포도밭 주인이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셈을 하도록 시켰다”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작정이라도 한 듯이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셈을 쳐 줌으로써 아침부터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립니다. 오늘 복음의 경제관은 이 자본만능 세상의 경제 질서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래 일한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누리는 일은 당연합니다. 적게 일했으면 적게 받고 많이 일했으면 많이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야 유지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이게 안 통합니다. 능력이 있건 없건, 오래 일했건 안했건,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그 시절 한 가족이 생활 할 수 있는 하루치의 생활비입니다. 하느님은 그것을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잘나건 못나건, 높건 낮건, 누구에게나 똑같은 해와 비를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 이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이요, 자비심입니다. 세상이 이 마음을 더 닮을 필요가 있습니다. 한 사회의 수준을 결정하는 일은 잘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멋들어지게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는가?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못나고 모자라는 사람들이 그 사회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 사회는 이 배려가 대단히 부족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밭에서 일한 일꾼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더 받는것’ 이 정당하다고 포도밭 주인에게 항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통치자들은 주인의 뜻에 따라 봉사하는 사람들임을 강조하십니다. 나는 더 열심히 했고 나는 더 기도를 많이 했으며 나는 매일 미사를 더 자주 나왔습니다. 그러니 나는 더 많은 대가를 얻어야 합니다.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도 포도밭의 일꾼들과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미사하고 더 오래 봉사하는 그 자체로 이미 나의 행복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참된 가치는 이미 거기에 있고 우리는 그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노력하고 수고한 보람을 얻는 일도 소중하고, 값지게 인생을 사는 일도 필요합니다. 대가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성실히 살아온 나의 삶 때문에 당당하고 자유로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어설픈 신앙은 자주 스스로를 주님 목장과 포도밭의 주인으로 착각하도록 만듭니다. 이런 신앙은 하느님을 다그칩니다 “하느님, 당연히 제게 바라는 대로 몫을 쳐 주셔야지요!” 이 때 하느님은 나에게 길을 가리키는 분이 아니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따라와야 하는 분으로 절락합니다. 기도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내 말만을 듣고 그대로 따라 주어야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이 받을 보상에만 온통 마음을 빼앗긴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롸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메시아의 길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 길은 섬기는 길이고, 경청하는 통치의 길입니다.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좀 들어달라고 간청하는 듯합니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