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20,19-31
부활 팔일 축제 동안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 이야기를 들었다. 예수님의 시신을 돌보려고 무덤에 갔던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여자들(주일, 월, 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수), 예루살렘에 있던 열한 제자와 동료들(목),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금), 그리고 오늘 토마스 사도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그 옛날 예언자들이 주님의 오심을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예고했듯이, 주님의 부활도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펼쳐졌다. 주님의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믿음은 이 거듭된 발현 사건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식물의 뿌리가 한 겹 표층이 아니라 여러 겹의 토양을 뚫고 내려가 흙을 단단히 붙들고 있어야 그 몸채가 바로 서듯, 제자들도 여러 번의 증언과 체험을 통해서라야 비로소 흔들림 없는 신앙에 도달할 수 있었다. 느린 여정이었다.
오늘, 부활 후 여드레 뒤에, 예수님은 또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다. 죽음 너머까지 이르는 사랑의 표지로 사도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빵과 포도주를 당신 몸과 피로 내어 주셨던 그 다락방에 제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다. 제자들의 마음 또한 두려움으로 꽉 잠겨 있었다. 바로 그 방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말로 인사하신다. 그분의 인사말은 십자가의 현장에서 뿔뿔이 도망친 제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뾰족한 창검이 아니었다.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한다고 나무라는 가시 돋친 말도 아니었다. 버림받은 심정을 하느님께 호소하시면서도 “다 이루어졌다” 하시며 모든 일에 분명한 마침표를 찍으셨던 예수님은 뒤를 돌아보며 서운하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할 필요가 없는 분이셨다. 그리고 이 인사 뒤에 예수님의 놀라운 선언이 따른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상한 일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당신 부활의 증인들을 믿지 못해 작은 방 밖으로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사명을 이어가도록 맡기고 계신다. “잘하였다,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큰 일을 맡기겠다.”는 말씀을 비유 속에 담아 들려주셨던 분이 아니신가. 탈렌트 하나를 끝내 땅속에 묻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종에게서 모든 것을 박탈하시고 바깥 어둠 속에 던져져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독하게 가르치셨던 스승이 아니신가. 그분은 지금 자기 자신이라는 탈렌트를 좁은 방안에 가둬두고 두려움으로 꽉 찬 마음 속에 한 번 더 가둬둔 제자들에게 당신 몸소 정하신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는 큰 사명을 맡기고 계신다.
그러나 살아생전에 “가진 사람은 더 가지고 가진 게 없는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스승께서는 지금이야말로 제자들이 믿음에 믿음을 더해갈 절호의 때라고 여기시는 게 아닐까. 자신들이 스승 곁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 스승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놀라운 사건을 포함하여 순전히 선물로 받은 그 모든 시간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믿음을 키워갈 때라고 여기신 게 아닐까. 내 안에서 믿음이 다 자라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그대로 전하면서, 그 선포의 울림이 다른 사람의 귀에 가 닿기 전에 먼저 자기 영혼에 천둥번개처럼 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자기 밖으로 뛰쳐나가기를 바라시는 게 아닐까. 지식이 산더미처럼 있어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가르치면서 배운다. 사랑이 차고 넘쳐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면서 사랑을 알아가고 사랑을 주면서 사랑에 젖어 든다. 신앙 또한 고백하고 선포하면서 키워가고 다져가는 것임을, 우리 주님은 잘 알고 계셨다.
스승은 자신이 유령이나 다른 누구가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했던 바로 그분이심을 당신 상처로 증명하셨다. 제자들, 특히 예수님이 당신 상처를 신분증처럼 내보이게 만들었던 토마스는 바로 그 상처를 통하여 세상에 주님을 선포할 수 있게 되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의 이 고백은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생생하게 새겨진 상처를 자기 것으로 삼는 선언이었다. “상처 입고 부활하신 저의 주님, 부활하신 뒤에도 상처를 간직하고 저에게 오신 하느님!” 그는 이 선포로 의심의 사막을 믿음의 옥토로 바꾸어 가는 첫 삽을 떴다.
제자들의 저 부족한 믿음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우리도 파견 받은 사람들이다. 부족하고 완고하다고 내쳐지기는커녕 복음을 선포하라고 세상에 보내진 제자들이 받은 성령을 우리도 받는다.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신비를 선포하러 내 좁은 방 밖으로 부단히 뛰쳐나가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