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일(2026년 3월 8일) - 주영일 스테파노 신부님(광주대교구)

홈지기 2026.03.10 23:36:56

(탈출 17,3-7; 로마 5,1-2.5-8; 요한 4,5-42)

 

. 찬미 예수님

 

준비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미리 마련하여 갖춤입니다. 우리는 일상 안에서 여러 준비를 하며 살아갑니다. 예컨대 아침 식사, 출근, 등교, 미사, 기도, 운동 등 무엇인가를 행하기 앞서서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면, 뜻하지 않는 상황과 결과를 마주하게 될 때도 있고, 과부하가 올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순시기는 부활을 맞이하고, 부활을 체험하고, 부활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입니다. 이를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준비할 것을 바라십니다. 누군가 ? 공부해야 하는가? ? 기도해야 하는가?’ 등의 물음을 던지면, 우리는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예시를 들 때가 있습니다. 그 예시를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1독서에서 히브리인들은 모세를 따라 이집트에서 해방하여 약속된 땅을 향해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해방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정이 해방의 길이요. 약속된 땅으로 나아가는 땅이라는 믿음을 가지기에는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기회를 맞이할 준비를 하기보다, 어서 빨리 그 땅에 도달하여, 편히 누리길 바랐습니다.

 

마음만 바빴던 그들은 걷고 걷다가 광야 한복판에서 목마르다며 불평하면서, 이렇게 고생하게 내버려두실 거면 그냥 내버려둘 것이지! 이럴거면 왜 데리고 왔느냐?’라고 소리칩니다. 메마르고 광활한 광야를 바라보며 해방에 대한 들뜸, 약속된 땅을 되찾을거란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광야라는 준비 여정을 걷지 않았다면, 또다시 약속의 땅이 아닌 억압의 땅에서 탈출의 때를 기다려야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체험 이후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앞서서 광야에 머무르시면서 준비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광야가 준비의 장소요. 하느님의 참사랑과 구원의 의지를 몸소 체험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장소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도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메시아를 알아보기 위한 준비를 아직 하지 못한 한 여인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그 여인은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상종하지 않는다는 상황안에서 자신에게 말을 건네오는 예수님을 웬 유다인 남자가 나한테 말을거나?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 눈을 피해 조용히 우물가에 와서 얼른 물만 뜨고 가려고 했는데하고 생각하며 얼른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그 남성이 더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합니다. ‘너에게 물을 달라고 청한 사람이 누군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먼저 나에게 생수를 달라고 말했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여인은 자신도 나름 이스라엘의 한 분파인 사마리아 출신으로서,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유다인으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인이요. ‘과거여러 남자를 만났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 놓인 지금유다인은 물론, 메시아가 내게 말을 걸어 올 것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 상황만을 생각하면서, 원망과 고립의 상황을 살아갔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사순시기를 보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난을 묵상하며 부활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만 오롯이 몰두하기에는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분께서 그토록 가시밭길을 걸어가고 계시기에, 나 또한 그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고립되고 소외되고 지쳐가는 일상을 걸어가면서, 그분의 부활을 맞이할 준비보다는 영적 목마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을 전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생명의 샘이심을 깨닫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이 한 주간을 보내고 나면, 태생 소경의 치유를 통해 그리스도는 우리의 을 마주하도록 초대받습니다. 이는 목마름과 허덕임, 길을 잃고 헤매이는 순간에 영원한 ’, 인도하시는 이 나와 우리와 함께하심을 기억하며 마주할 준비를 하라는 그분의 초대로 이해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