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일(2026년 2월 22일) - 김명철 요셉 신부님(광주대교구)

홈지기 2026.02.23 17:21:06

오늘 제1독서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흙에서 났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숨을 지닌 존재입니다. 우리는 숨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단순한 공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숨, 곧 생명의 영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죄를 지음으로 이 숨을 잃어버리고 죽음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인간이 다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예수님은 숨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요한 복음 20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의 말씀이 아닙니다. 새 창조입니다. 첫 창조 때 하느님께서 흙에게 숨을 불어넣으셨듯이, 이제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두려움에 갇힌 제자들에게 생명의 숨을 다시 불어넣으십니다. 그 숨은 죄를 용서하는 힘을 지닙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숨은 죄와 죽음에서 승리하신 새 아담이 지닌 생명의 숨이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이 숨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숨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오늘의 복음에 나오는 광야의 유혹 이야기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잃어버렸던 생명의 숨을 되찾게 되는 예수님의 승리를 암시해줍니다. 예수님은 세 가지 유혹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신 새 아담이신 예수님은 복음삼덕 즉, 가난, 정결, 순종의 정신으로 세 가지의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악마는 굶주린 예수님께 돌을 빵이 되게 하라고 유혹합니다. 사물들을 자신의 안전으로 삼으라는 유혹입니다. ‘뭣이 중헌디!’ 사물이냐? 하느님이냐? 바로 가난에 대한 유혹입니다. 우리는 기꺼이 가난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복음의 예는 마리아와 마르타 이야기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마리아는 참으로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곧 영원한 생명을 위한 빵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마르타는 부엌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봉사하며 사랑을 실천하지만, 많은 일들에 분주하여 본질을 놓치는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마리아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선택하였습니다. 주님의 발치에 앉아 사랑받는 자녀로 머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최고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빵을 얻기 위해 마르타처럼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깨닫는 것, 하느님께 의지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자녀됨을 깨닫고, 의탁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숨을 주시고 우리는 우리가 받은 숨으로 모든 것을 소유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유혹은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 천사들이 땅에 닿기 전에 몸을 받아 줄 것이니 몸을 던지라고 유혹합니다. 악마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눈길을 끄는 행동, 곧 기적을 하도록 유혹합니다. 기적을 통해 사람들을 매혹시켜서 조종하고 지배하는 사람이 되라고 속삭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결에 대한 유혹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나는 모든 이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며, 그 사랑 안에서 생명과 용서와 치유를 주십니다. 이것이 정결한 사랑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매혹적인 것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사랑은 생명을 되돌려 주지 않고 오히려 빼앗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타인을 지배하지 않고 존중하는 정결한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마지막 유혹에서 악마는 예수님께 자신을 우상처럼 숭배하면 이 모든 나라에 대한 주권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악마가 왕권을 주긴 하지만, 그 대가로 노예가 되게 한다는 사실을 폭로하십니다. 나라를 지배하는 권력이 크고 좋아보이지만, 그 결과로 주어지는 것은 악마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순종하는 삶을 선택하십니다.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은 하느님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받으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시며, 그것으로 우리를 더욱 자유롭게 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서 이 광야에서의 유혹을 마치시고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을 보내시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담은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이 갖추어진 동산에서 패배했지만, 새 아담이신 예수님은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생명의 숨을 받으시며 승리하십니다. 광야에서 보여주신 가난, 정결, 순종의 삶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승리로 이끄는 훈련이며 과정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실 안에서 설령 그러한 유혹에 졌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의 영을 불어 넣어주시어 우리를 재창조하십니다.

 

사랑하는 숨님들,

광야와 같은 우리의 삶이 유혹으로 점철되는 삶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오히려 계속해서 하느님의 숨을 들이쉬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광야 한가운데에서 서 있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가난, 정결, 순종의 삶으로 하느님의 숨을 더욱 세차게 쉴 수 있도록 예수님께 숨을 불어넣어주시길 청해봅니다.

~ 주님의 숨을 불어넣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