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일 (2025년 11월 16일) - 김정용 베드로 신부님(광주대교구)

홈지기 2025.11.17 01:39:42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말라 3,19-20/ 2테살 3,7-12 / 루카 21,5-19

 

오늘은 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우리 교회가 전례 안에서 특별히 고유한 지향을 두는 것은, 전례 자체가 지닌 의미와 특성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뜻깊은 일입니다.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고 찬미하며, 그 사랑이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을 감사하는 데 궁극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기억과 찬미 그리고 감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명될 수 있겠지요.

우리 교회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정해서,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우선적으로 사랑하셨던 가난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복음임을 깨닫도록 초대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가난한 사람이었고, 가난한 사람으로서 복음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세상을 일깨우는 희망의 복음으로 선포하셨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마태 5장 참조)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고 선택하는 일은, 누구나 차별 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대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길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이야말로 모든 이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완수할 수 있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의 길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늘 루카 복음의 서두는 성전 파괴를 예고합니다.(루카 21,5-6 참조)

그러나 성전 파괴 예고는 파괴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 파괴는 파괴가 아니라 성전의 근원적인 쇄신이요, 새로운 성전 건설을 위한 장엄한 선포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존재를 성전으로 선포하시기 때문입니다.(요한 2,19.21 참조)

이는 곧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고 파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성전으로 선포하시는 순간이기도 합니다.(1코린 3,16-17)

따라서 그 누구보다도 먼저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성전, 하느님의 이콘(아이콘)으로서 표명되는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에서 인간적 삶과 존엄성이 침해당하고 파괴되고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폭력, 종교적 정치적 박해는 오늘 복음 내용을 포함하는 루카 21장 전체에서 묘사되고 있는 세상 끝 날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전쟁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도 있습니다.

전쟁이야말로 인간이 직면하는 재난과 멸망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세상 끝 날의 비극적인 풍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재난과 멸망의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은 하늘을 찌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기를 바라며, 세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께서 어서 오시기를 더욱 절박하게 기다리는 때를 지내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 21장은 재난과 멸망의 한가운데 오시는 사람의 아들에 대한 희망을 증언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인간과 세상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악과 죄, 세상의 폭력을 끝장내러 오신다는 것입니다.(루카 21,28 참조)

이것이 구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과 도시를 멸망시키거나 쓸어버리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우리 삶 한가운데 오시어 우리와 함께 사시게 된다는 것입니다.(요한 1,14 참조)

 

세상의 죄와 악의 물결이 아무리 거세다 해도 우리는 이제 우리에게 오시는 사람의 아들을 모시고 사는 성전입니다.

그리고 이 미사 중에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성찬례를 통해서 우리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성전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고통과 연대하고,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연대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복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은총을 하느님께 청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