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씨튼동반회 사명갱신식과 봉헌식) - 박재형 미카엘 신부님(글라렛선교수도회)

홈지기 2025.09.29 16:54:59

참 좋은 날 아름다운 곳에서 씨튼 수녀님들과 동반회 회원 여러분들과 함께 미사할 수 있도록 초대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이 미사는 씨튼동반회 피정 미사이면서, 이 안에서 사명갱신식과 봉헌식이 진행되지요. 이 은총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더없이 기쁘고, 또 교회의 사람으로서 대상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갱신과 봉헌을 통해 여러분들은 씨튼-빈첸시오 영성을 살기로, 그리고 하느님 사랑을 증거하기로 다짐하시고 또 필요한 은총을 청하시게 됩니다. 그렇게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에는 깊이와 넓이가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깊이가 다르고, 어떤 존재까지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넓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특별히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그 깊이와 넓이를 묵상해볼 수 있습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재물은 좋은 것입니다. 구약성경도 재물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이야기하지요. 또, 재물이 있어야 우리 마음도 너그러워지고 다른 사람을 돌볼 여유도 생기니, 재물을 나쁘다고 할 이유가 없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재물이 많다는 이유로 부자를 나쁜 사람으로 매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부자는 하느님께 재물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찬찬히 보노라면 좀 이상합니다. 그렇듯 재물의 축복을 받은 부자가 죽음 이후에 부유하게 좋은 것들을 받았다는 이유로 벌을 받게 되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가 특별히 죄를 지은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죽어서까지 자기 형제들의 처지를 걱정할 만큼, 가족에 대한 사랑도 많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는 불길 속에서 고초를 받지요. 이는 그의 사랑이 자기 가족들에게만 한정된 사랑, 다시 말해서 자기 집 문턱을 넘지 못하는 좁은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레오 14세 교황님께서, 테슬라 최고경영자인 일론머스크가 노동자들의 임금과 비교해 600배를 받는 현실을 지적하신 적이 있지요. 노동자들이 한 달에 300만원 받을 때, 일론머스크는 20억원을 받는다는 건데, 어느 모로 그 노력은 인정해 주어야겠지만,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며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하게 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공평치 못한 상황이 너무 많습니다. 부모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아 태어나면서부터 부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애를 써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또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안고 태어나 남들보다 몇 배로 노력해도 늘 뒤쳐질 수밖에 없는 이들도 있지요.

 

전 세계적으로 볼 때도, 내전으로 나라를 잃고 생존마저 위협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평화로운 일상을 당연하게 누리는 이들도 있고, 글도 배우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외국어를 공부하고 고상한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불공평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왔습니다. 과학과 기술 발전을 통해 생산력을 크게 늘리기도 했고, 또 공산주의라는 제도를 통해 모든 재화를 균등하게 배분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한편, 성경은 시종일관 다른 방법을 제시합니다. 모든 이들이 서로를 돌보고 나누는 노력을 통해서, 곧 사랑함으로써 이 불공평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 나눔의 대상이 자기 가족에게만 한정되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인류가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라는 의식이 있다면 그럴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나눌 수 있는 충분한 재화가 있었음에도 그 나눔을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만 한정짓고, 바로 대문 앞에서 굶주리고 있던 이웃의 딱한 처지는 외면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배고픔과 불평등은 과학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경계를 넘어서는 넓은 사랑과 너그러운 마음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비단 먹을 것과 재화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소외된 이들, 아픈 이들, 권력자들에게 핍박받아 목소리를 감히 내지 못하는 모든 이들이 바로, 우리 대문 앞에 누워 있는 라자로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제와 오늘 강의를 통해 다시금 기억하셨을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 대문 앞에 누워 있는 라자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턱과 경계를 넘어선 넓은 사랑으로, 그들과 깊이 마음을 나누도록 초대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재촉되어, 하느님의 뜻을 찾고, 사랑을 실천하는 씨튼-빈첸시오 영성은 우리 교회의 소중한 보화입니다. 그 영성을 배우고 살아가는 모든 동반회 회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또 앞으로의 여정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이 여정을 통해 여러분들의 사랑이 더 깊어지기를, 그리고 모든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피조물들에게까지 그 사랑이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경계없는 사랑으로 문턱을 넘어 우리 주변의 모든 라자로들을 따뜻하고 너그럽게 돌보고 사랑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곧 사명갱신과 봉헌예식이 진행됩니다. 이 시간을 통해 씨튼 동반회원으로서 늘 하느님 현존 가운데 머물며, 겸허와 소박, 그리고 사랑을 완성시켜가기로 다짐하고, 또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